시인의 눈에 비친 '섬'은 … 보물을 품은채 떨고 있었다
▲ /사진제공=신현숙씨

뭍과 섬, 섬과 섬 잇는 삶

12년간 400여곳 다니며 글써 … 마을 사람 이야기에 좋은 영감


'개발'의 다른 이름은 '파괴'

켜켜이 쌓인 역사·문화·자연, 그 자체로 보존해야 가치 창조




"섬이란 게 한번 망가지면 회복되기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니 걱정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강제윤은 시인이며, 섬 연구자다. 12년 동안 400여 개의 섬을 답사하고 섬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글과 사진으로 발표했다. 뭍과 섬, 섬과 섬을 이어주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섬 문화와 해양 유산, 역사와 지리, 인물 등 유무형의 숨어있는 보물을 건져올렸다. 시인의 '직관력'으로 이론가나 활동가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까지도 잡아냈다.

이제, 시인은 관찰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섬 지킴이 활동가'로 나섰다. 섬에 남아있는 오랜 삶의 기억을 어떻게 보존하고 재구성할 것이며, 외부의 개발 압력과 해양생태계 훼손을 막아내서 그 섬의 문화원형과 진정한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 지를 고민하고 있다.

섬은 그 자체로 하나의 대륙인데, 사람들이 섬을 단순한 개발과 관광, 힐링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못마땅하다. 수 억만 년에 걸쳐 자연이 빚어낸 섬의 아름다움을 콘크리트의 방조제나 해안도로 등으로 '개발한다'고 함부로 뭉개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 앞바다에는 영종도와 덕적도, 자월도 등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역사문화가 풍부한 크고 작은 200여 개 가까운 섬이 떠 있다. 그에게 섬 이야기를 들어본다.


▲섬은 어떤 곳인가.

―섬은 그 자체로 오롯이 가치를 지닌다. 마을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고, 투박한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붕없는 박물관이다. 섬에 자본이 들어오고 토목사업을 벌리고, 현대적인 건물을 올리는 순간, 섬은 망가지고 그 가치를 잃는다.

사람들이 섬엔 왜 가는가. 경관? 먹거리? 아니다. '섬마을'을 보고 싶어서다. 그곳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려고 찾는다. 육지에는 없는 잃어버린 고향의 원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꿋꿋히 내려오고 있는 변함없는 섬의 그 무엇을 그리워한다.

인위적인 구조물은 어느 섬의 박물관처럼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도 않고, 주민 조망권도 침해하고 있다. 내용물도 사진과 모형 전시 정도에 그친다. 그런 박물관을 섬에 만들 필요 있는가. 그런 돈 10분의 1이면 빈집 고쳐서도 만들 수 있다. 섬을 대상화 시켜서 뭘 만들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섬이 가지고 있는 자연과 역사, 문화 그 자체로 가치 있다. 섬에 없던 것을 만들면 섬의 자연환경은 훼손될 수 밖에 없다. 섬 자체가 문화공간이다.


▲섬의 가치는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가.

―섬은 그 자체가 대륙이다. 그 섬에 켜켜이 싸여있는 역사와 문화, 풍속 등에 대한 기초 연구조사를 통해 그 섬의 특색과 장점을 발견해야 한다. 그 특징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그 섬의 가치를 재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연평도의 조기 파시나 덕적도의 민어 파시의 역사를 재현한다든지, 덕적도에 옛 선주가 살던 2층 집(배가 들어오고 가는 것을 살피던 집)의 가치를 평가한다든지, 백령도 사곶해변을 살려낸다든지 등이다. 선갑도 석산개발도 그렇다. 섬을 파괴하면서 무슨 섬의 가치 창조가 가능하겠는가. 이작도 풀등 역시 인근에서 유압호수로 바닷모래를 빨아들여서 채취하다보니 풀등이 죽어가고 있다. 이런 걸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가치 재창조다.

▲인천시에서 애인(愛仁)섬 만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주민이 살고 싶은 섬을 만들어야 한다. 대형숙박시설이 아니라 개인 민박과 마을 공동식당, 협동조합 등 주민소득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기반시설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인천시의 정책은 순서가 바뀌었다. 결국, '사업하겠다'는 것인데, 누구를 위한 개발이며, 관광인가. 섬은 관광객의 놀이터가 아니다. 주민을 위한 배려와 고려가 먼저여야 한다. 관광객이 지속적으로 재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섬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브라질의 섬, '페르난도 지 노롱야'는 체류세를 받고 있다. 이는 주민도 관광객도 만족하고, 힐링하며, 또 오고 싶은 섬이 됐다. 섬은 일종의 공유재산이다. 대형 놀이시설에 입장료와 시설 사용료를 내는 것처럼 섬도, 적정 인원이 들어오도록 제한하고 체류비를 받는 문화인식이 필요하다.

주민도, 관광객도 만족할 수 있는 관광이어야 한다. 비행장과 여객선 터미널 건립, 문화공간 건물 짓기 등 이런 토목사업 위주로 진행한다면, 섬의 가치를 파괴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철학이 없는 개발, 이벤트 중심의 가치창조는 반드시 실패한다.


▲섬을 살려내는 방안이 있다면.

―홍도나 울릉도, 소매물도가 시설이 좋아서 가는 것이 아니다. 섬 그 자체를 보러간다. 돈을 들여서 뭘 만들 필요 없다. 오히려 주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생산기반같은 데에 신경써야 한다.

섬은 청년 창업의 기회와 자원이 많은 곳이다. 청년들이 돌아오는 섬으로 만들어야 한다. 실제, 예술가들이 공방 등을 만들어서 섬을 살린 경우가 홍콩의 '람마' 섬이다. 이 섬처럼 예술가의 섬을 만드는 것도 방안이다. 섬 빈집에서 4~5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1년 이상 직접 섬 생활을 한다면, 주민은 물론 마을 전체에 활력을 줄 것이다. 섬 레지던시하고는 개념이 다르다. 젊은 예술가들이 섬을 가꾸고, 문화를 만들고, 꿈도 펼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랬을 때, 인천 섬의 가치를 재창조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 백령도 사곶해변이 죽어간다는데.

―서해 최북단의 섬, 사곶해변(사곶사빈)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천연비행장으로 활용된 천연기념물인데, 이제는 곳곳이 사람의 발도 빠질 정도로 푸석푸석해져 버렸고, 흰 모래밭은 썩어가고 있다. 진촌지구 간척사업과 오염된 백령호에서 흘러나오는 오폐수가 사곶해변을 망치는 공범이다. 제방을 트고 해수를 유통 시킨다면 황무지로 버려진 간척지는 갯벌로 환원되고, 사곶해변도 되살아 날 것이다.


▲북성포구가 개발 압력을 받고 있는데.

―경관이 황금인 시대다. 북성포구는 원시의 갯벌과 현대의 공장들이 공존하고 있다. 인천의 그 마지막 남은 갯벌을 매립하려는 이들과 갯벌을 지키려는 이들 간의 긴장이 팽팽하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과 지자체에서는 매립하려는데, 현명한 대처가 아니다. 시민단체보다 주민 스스로 갯벌 보존에 나서야 한다. 갯벌을 보존해야 경관가치 때문에 집값도 더 오를 것이다. 악취문제는 썩은 갯벌을 파내고 오폐수 유입을 차단하면 해결된다.

/이동화 기자 itimes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