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얀마 양곤의 세계적 불교유적인 '쉐다곤 파고다'. 수많은 보석과 황금으로 뒤덮여 있다. 내세의 행복을 기원하기 위한 미얀마인들의 간절함이 돋보인다.
▲ 미얀마 손꼽히는 여행지 '파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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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레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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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쉐산도 파고다에서 바라본 바간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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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안


미얀마를 가려고 한 이유는 간단하다. 안 가본 곳이라서.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달리 아직은 때가 묻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로 '동남아 최후의 여행지'라는 불리는 미얀마는 끊임없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면서도 평소 귀찮은 걸 싫어하며 돈도 많지 않은 난, 비자가 필요한데다 저비용 항공사로 직접 갈 수 없는 곳이라 미얀마 여행을 계속 미뤄왔다. 그러다 결국 지난해 봄, 저비용 항공사 프로모션이 나왔을 때 인천~방콕 왕복 티켓을 끊은 뒤 방콕에서 만달레이(미얀마 북부도시)로 들어가 양곤(미얀마 남부도시)에서 방콕으로 나오는 여행 루트를 짰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미얀마 여행을 가려고. 방콕에서 미얀마로 들어갔다 나오는 교통편 역시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했다. 인천↔방콕 왕복 및 방콕→만달레이, 양곤→방콕 노선의 비행기 값은 모두 합해 30만원이 넘지 않았다. 여행기간은 구정 연휴가 껴있는 올 1월 하순으로 잡았다. 드디어 난 1월24일부터 13박14일 일정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미얀마에서는 11박을 했다. 만달레이, 삔우른(Pyin oo lwin), 인레호수, 바간, 파안(Hpa-an), 몰레먀인(Mawlamyine), 양곤 등지를 여행했다. 도시 간 이동을 할 때는 시간과 돈을 아끼고자 야간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미얀마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방콕에서 각각 1박을 했다.

▲지나친 환상은 독이될 수도
기대가 커던 탓일까. 여행 이틀 만에 나는 '아시아의 마지막 보석'이라는, 미얀마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비웃었다.

여행 닷새가 지나고나서부터는 내가 순진했음을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고, 이 나라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환상을 버렸다.

특히, 미얀마에서 가장 인기있다는 여행지인 바간과 인레호수를 여행하고 나서 이 생각은 확고해졌다. 이 두 곳은 동남아뿐 아니라 그 어떤 인기 여행지에서나 있을 법한, 여행자를 불쾌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다 가지고 있었다.

비싼 물가는 물론 바가지 요금, 한국인을 봉으로 여기는 현지인들, 이에 비해 형편없는 시설이나 서비스까지.

(물론 많은 여행지에서 한국인이 현지인들로부터 '돈많은 호갱' 대접을 받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 돈자랑 또는 문제가 생겼을 때 정상적인 수단보다는 돈을 앞세워 편법으로 해결하려는 일부 여행객들의 행태가 쌓이고 쌓여 오늘날 이런 현실을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얀마니까 조금 다를 것'이라는 나이브한 기대가 더 큰 실망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바간과 인레호수는 가볼만한 곳이다.

미얀마 불교 문화의 정점에 있는 바간은 미얀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릴 만큼 최고의 여행지다.

해발 875m에 자리잡은 인레호수 역시 '평화롭다'라는 말이 절로 생각날만큼 아늑한 곳이다.

이 두 곳에서 서양사람들이 가장 많이 외치는 소리가 바로 뷰티풀(beautiful), 원더풀(wonderful), 피스풀(peaceful)이다.

그런데 이들은 미얀마는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곳에 왔다기보다는, 다른 유명한 여행지와 마찬가지로 여행자를 상대로 한 현지인들의 '적당한' 상술에는 기꺼이 놀아나주겠다는 자세로 방문했으리라.

실제, 내가 여행 중 만난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미얀마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미얀마 역시 그들에게는 그냥 여행다니기 좋은 여러 동남아 국가 중 하나일 뿐이었다.

우리도 이런 자세라면 오히려 바간과 인레호수의 매력을 더 충분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유독 한국인들은 미얀마에 대해 여전히 기대와 환상을 품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상대적으로 한국인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라서?

그렇다면 왜 한국인은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미얀마를 잘 가지 않을까.

이는 여행 중 누군가 나에게 묻기도 한 질문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각자의 상상이 필요하다.

▲날 위로해 준 파안, 방비엥+빠이
인레호수와 바간을 거치며 기대를 버리고 다시 시작한 미얀마 여행. 애초 계획에는 없었지만 여행 중 만난 몇몇 외국인들의 추천으로 난 파안이란 곳으로 향했다.

바간에서 양곤, 양곤에서 다시 파안까지 무려 18시간쯤 걸린 것 같다.

외국인들이 묵을 수 있는 저렴한 숙소가 많지 않아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하룻밤에 5달러짜리 도미토리를 구했다. 옥상을 개조해 지붕을 씌운 뒤 바닥에 매트리스만 깔아놓은 시설이었지만 정말 싼 맛에 거기서 이틀을 묵었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운영하는 데이투어를 이용해 이틀 동안 여기저기를 다녔다.

파안의 자연은 카르스트 지형으로 유명한 중국의 계림과 라오스 방비엥의 모습이 반, 평온한 시골 풍경으로 유명한 태국 북부 산악지대 빠이(pai)라는 곳의 모습이 반쯤 섞인 곳이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곳(한마디로 시골 느낌)에 대한 우리나라 여행자들의 평가는 양극단으로 나뉘는데 난 개인적으로 이 곳에서 보낸 시간이 미얀마 여행 중 가장 행복했다.

파안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몸마저 피곤해질 무렵 나에게 그나마 미얀마 여행을 온 이유를 만들어 준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양곤에서 난 이유를 하나 더 찾았다. 바로 쉐다곤파고다. 그 위엄과 화려함은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사진 찍는 것을 즐기지 않는 나도 2시간 넘게 쉐다곤 파고다 주위를 돌며 마구 카메라를 들이댔으니까.

▲미얀마만의 특별한 순박함 보려는 건 'NO'
결론적으로 "미얀마 너무 좋으니 여러분도 꼭 가보세요~"라며 권하고 싶지 않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달리 아직은 때가 묻지 않았을 것이라는, 미얀마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말 그대로 환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는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니 미얀마를 여행한 뒤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거나, 앞으로 미얀마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은 너무 신경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얀마를 소개하는 많은 여행가이드북에서는 우리말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밍글라바'를 외치며 손을 흔드는 수줍은 표정의 미얀마 어린이들을 여행 중 자주 만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실제, 나는 밍글라바를 외치며 여행자들을 반기는 많은 어린이들을 만났다.

그 모습은 우리도 손을 흔들며 가볍게 스쳐지나갈 때 순박했고 귀여웠다. 하지만 그들에게 접근해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웃어주려 애쓰는 듯 보이기도 했고, 당황하거나 지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난 우리가 평범한 방법으로 접근 가능한 지구상 어느 곳에 특별히 순박한 사람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그런 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그런 이들을 만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것은 좀 어이없다.

순박함을 쫓아 미얀마를 방문하겠다는 생각은 하지말자. 우리가 찾는 순박함은 어디에나 있고, 또 아무 곳에도 없다. 

/미얀마=글·사진 이종만 기자 male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