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택트>가 인기 상영 중이다. '외계인 영화'라기에 <우주전쟁>처럼 지구를 침략하는 SF영화이거나 우주영화인가 했더니 웬걸 그건 언어학 영화였다. 영화를 토대로 할 때 언어학이라는 것이 단지 말과 글을 익히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기 보다는 '소통'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언어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 생각의 구조 등이 반영돼 있으므로 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세계를 파악한다는 것과 밀접하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무려 외계 존재의 한 번도 본 적 없는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현재 한국의 모습은 아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2017년의 한국은 거의 '여성어'와 '남성어'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놀랍게도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통의 문제는 단지 '이해'불가의 문제가 아니라 한 쪽의 언어가 다른 쪽의 언어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발화된다는 점에 있다. 언어가 그것을 사용하는 자의 '사고방식'과 밀접하다고 할 때, 가부장적 남성의 언어는 여성 존재를 한계 짓고 규정 지은 혐의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한 '남성적 사고방식'은 여성 존재에 대한 압제로 드러난다. 이렇게 보면 실은 소통불능의 상황은 억압하려는 자와 해방하려는 자 간의 충돌이므로 그야말로 '불능'의 상황일 수밖에 없다.

편의상 '여성어'와 '남성어'로 지칭하기는 했으나 이 언어는 단지 성별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은 '억압받는 자'의 언어와 '가부장/기득권'의 언어로 구분하는 편이 더욱 적절하며 그 '언어'의 핵심은 '억압'과 '군림'에 있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소통은 '여성어'나 '남성어' 어느 쪽의 편을 들어주느냐의 문제보다도 '사람의 언어'를 향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억압받는 자'의 목소리가 해방되는 것, '(남성의 시각에서 상정되는) 여성어'와 '남성어'의 프레임을 파괴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함은 물론이다. #영화 #arrival #컨택트 #언어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