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철 ㈔인천연수원로모임 회장·전 인천연수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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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노라면 청초한 하늘 밑의 대한민국은 마치 금방이라도 둘로 쪼개질 듯 위태롭게 보인다. 전혀 다른 시각의 국민들이 좁은 국토에서 둘로 갈라져 각각 다른 진영을 압박한다. 마치 다른 쪽으로 결정이라도 나면 결코 승복하지 않을 것처럼 비장하고도 결연하다. 어찌 변할지 모르는 시국상황에서 국가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잠룡들은 극한 추위 속에서도 바지런하게 움직인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찬성 측과 반대 측의 시위는 점점 그 강도가 더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해방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환영 인천시민대회를 앞두고 찬성 측과 반대 측 간에 벌어졌던 성명싸움이 생각나는 것은 공연한 우려인가.

나라가 이처럼 소위 보수와 진보라는 벽을 경계로 나누어져 있다면 좌우익으로 갈라져 결정인 이념과 시국관의 차이로 분열돼 있었던 그 당시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아직도 우리는 국가정체나 이념 하나를 일체화하지 못하고 혼돈의 망령에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에 나이든 사람으로서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느낀다.
온 국민이 힘을 다 합해도 격동의 국제사회, 우리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 일본, 북한 등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처하기에 벅찬 현실에서 국민적 관심이 온통 국내의 이념싸움에 목이 매여 있다면 창피한 일이다. 그것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져야 함은 물론이다.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보다 오히려 그렇지 못한 무지랭이 서민들이 먼저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할 것이다. 종교적이든 문화적이든 진정한 어른을 키워내지 못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면 잘못이리라.

탄핵에 따른 헌재의 결정이 어떻게 나든 금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전쟁 때는 전쟁을 끝낼 용장이 필요하고, 홍수가 잦을 때는 치수를 잘 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듯 시대적 상황의 결핍을 메울 지도자를 원한다. 새로운 지도자는 우선 둘로 갈라져 있는 국민을 하나로 붙여놓아야 한다. 이념의 통합, 세대 간의 통합, 빈부의 통합과 같은 민심 통합이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무가 돼야 한다. 좀 격하게 표현하자면 탄핵정국으로 갈가리 찢긴 국민들의 상처를 치료해줘야 하고, 고단한 서민들이 기대어 쉬거나 때로는 부둥켜안고 울 수 있는 그런 포근하고 넓은 바위가 돼줘야 한다. 널리 듣고, 열심히 공부해 신중히 결정하고 실천에는 강유(剛柔)가 조화롭고 그 결과에 치졸한 변명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책은 명분히 있어야 국민들이 따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하물며 한 국가를 이끌어갈 지도자인데 그 중요성은 무엇에 비교하랴. 지금 열심히 뛰고 있는 잠룡들에게 감히 청하건 데 진정으로 면벽(面壁)해 자신과 마주하되 국민의 신뢰를 받을 자신이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욕심을 버려라. 자신의 됨됨이와 값어치는 자신이 가장 잘 알지 않은가? 신뢰는 지도자 최고의 덕목이다. 만인이 우러르는 권력과 명예를 얻고자 한다면 우선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는 청렴으로서 위정(爲政)의 요체다.

그밖에 서민들이 새 지도자에게 바라는 바야 거의 같지 않겠는가. 경제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서 삶의 질을 높여야 할 것이고 사회는 내 탓, 네 탓만 하지 말고 서로 용서하고 화합해서 아름다운 공동체가 형성되도록 위에서부터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획일교육보다 인간을 만드는 전인교육에 치중했으면 한다. 종교는 종교인이 되지 말고 신앙인이 됐으면 한다. 문제는 정치가 바로 서지 않으면 경제발전도 사회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데 있다.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정치를 불신하는지 정작 정치인들이 모른다면 새빨간 거짓말이거나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는 자격이 없는 정치인이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여전히 내려놓지 않고 거꾸로 국민들의 위에서 법을 만들고 군림하는 한 그 불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들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아무런 희생과 헌신을 하지 않으면서 어찌 국민들의 헌신과 희생을 바라는 것인가.

지금도 개혁을 부르짖으며 밥그릇을 내려놓겠다고 공언하면서도 그 수준을 유럽국회의원 수준으로 하자면 고개를 내젓는다. 국민의 심부름꾼이라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는데 누가 허리띠를 졸라맬 것인가. 그들의 말, 그들의 정책이 공허하게 들리고 믿지 않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침묵하는 다수가 동조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어렵지 않았던 때가 얼마나 있었겠느냐만 여전히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수북한 대한민국이다. 새 지도자는 먼저 정치권의 개혁을 시작으로 갈라진 민심을 지혜롭게 수습해주기를 바란다. 지도자와 정치권이 모범을 보인다면 국민은 따른다. 우리가 원하고 기대하는 대한민국은 지금이 최선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이 결코 죽지는 않을 테지만 혹여라도 지금에 만족해서도 안 된다. 진정한 대한민국의 완성은 우리들의 희생과, 높은 교양과, 지도자를 비롯한 정치권의 모범을 요구하며 계속돼야 하는 지난(至難)의 행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