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글씨디자인"한글로 통하는 세상 만들고파"
▲ 캘리그라퍼 '이형구'
▲ 지난해 인천 스퀘어원 개인전에서 진행된 캘리그라피 시연회 당시 모습. /사진제공=이형구 작가

'손글씨'에 남다른 관심·연구 … 2004년부터 지역에 노하우 전수
"학생들 악필" 교정 강의 … 지난해 개인전·외국인 관광자원 구상


'캘리그라피'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거리 간판과 표지 디자인, 광고, 영화 타이틀, 자막 글씨, 식품 등등 그야말로 모든 디자인 분야에 캘리그라피가 활용되고 있다.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아름다운 서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 'Kalligraphia'에서 유래된 전문적인 핸드레터링 기술을 뜻한다. 개성적인 표현과 우연성이 중시되는 캘리그라피는 기계적인 표현이 아닌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있는 글자체'다. '예쁜손글씨, 바른글씨'와 '대한민국 캘리교과서' '이형구 캘리그라피'의 저자이자, 한국손글씨디자인연구회장과 국제손글씨 POP협회장, 인천지역 1세대 캘리그라퍼로 활동 중인 이형구 작가를 만나봤다.

▲인천 최초의 캘리그라피 전도사
이형구 작가는 글씨 디자인에만 27년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1세대 캘리그라퍼다. 이 작가는 '캘리그라피'라는 말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손글씨에 남다른 관심과 애착으로 관련 분야를 연구했다. 이후 '한글로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로 인천 전역에 캘리그라피를 알리기 시작했다.
"2004년 신세계 아카데미에 1기 캘리그라피 강사로 나섰는데 수강생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주부와 직장인들로 강의실이 메워지기 시작했죠. 한 기수에 15명을 정원이 꽉찰만큼 좋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당시 수료한 학생 중에는 지역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습니다."
이후 그는 도서관이나 방과후학교, 자유학기제에 참여해 한글쓰기의 참된 의미를 널리 알리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기로 했다. 중구여성회관과 구월여자중학교, 주안도서관과 미추홀도서관, 해밀학교, 인천글로벌캠퍼스(IGC) 등 캘리그라피에 관심을 갖는 시민들이 찾는 모든 곳에는 그가 함께했다. 연수구 송도동에 마련된 그의 작업실에는 직접 캘리그라피를 배우러 오는 수강생이 30여명을 훌쩍 넘는다.
이 작가는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글 글씨 교정도 진행하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컴퓨터나 휴대폰 자판에 익숙해 글씨 쓰는 것을 꺼려하고, 악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한글을 왜 잘 써야하는지 조차 모르죠.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글을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는 인식을 길러주기 위해 글씨 교정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가 제작한 글씨 교정본 안에는 고사성어와 우리나라 최초 인천 이야기가 가득하다. 가령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있는 섬은 인천 중구에 있는 팔미도다'라는 글씨를 따라쓰면서 서체를 교정하고, 지역 사회에 대한 지식까지 함양시키도록 했다.
이 작가는 "고사성어의 뜻과 인천의 근대역사를 문장으로 실어 서체 교정과 함께 자연스럽게 내용을 습득할 수 있어 아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무궁무진한 캘리그라피의 매력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출신인 이형구 작가는 어릴 때부터 책을 비롯해 생활 곳곳에 있는 글씨를 따라 쓰곤 했다.
"전공은 토목쪽인데 설계를 할 때에도 그림과 글씨를 많이 접했고, 군대에서도 현황판에 차트글씨 쓰는 일을 담당하다 보니 글씨라는게 항상 삶 가까이에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 사회에 나와서도 디자인 글씨를 써달라는 제안을 수차례 받았고, 그때마다 반응이 좋았다. POP글쓰기 등 관련 기술을 모두 습득한 그는 캘리그라피라는 디자인 문화가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캘리그라피가 수익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그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생업으로 뛰어든 셈이죠. 컴퓨터 폰트의 단조로움은 인간의 감성을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캘리그라피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라는 점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이 작가는 "글씨를 쓰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글씨체로 새로운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데, 글씨의 선은 인간의 진솔한 마음이 가장 다채롭게 드러내면서도, 인간의 감수성을 잘 이끌어 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아울러 캘리그라피는 붓, 펜, 나뭇가지, 칫솔, 수세미 등 어떤 도구로도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무엇이든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아무렇게나 쓰는 것이 아니라 가독성 있게 느낌을 살려서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연하고 동적인 선, 글자 자체의 독특한 번짐, 살짝 스쳐가는 효과, 여백의 균형미 등도 세심하게 신경써야 하죠."
그의 캘리그라피에는 윤동주, 김형택, 도종환 작가 등의 글을 인용하기도 하지만 절반 이상은 본인이 직접 지은 글을 사용한다.
"여가시간에도 친구들을 만나기보다는 글씨를 씁니다. 성격이 온화해지는 것을 느끼고, 정서 함양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연필 들 힘만 있다면 노후에도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제게는 그만큼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관광자원으로 활용 염원
이형구 작가는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KBS본관 1층과 인천 스퀘어원, 송도국제도시 G타워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G타워에 마련된 전시회에는 상당수의 외국인이 관람하며 캘리그라피에 주목했다. 일부 관객은 문자로 형상화된 작품만으로 한글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 작가는 "K-POP과 함께 우리 문화가 해외로 번져가는 상황에서 우리 한글도 외국인에게 널리 알려지는데 캘리그라피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계 54개국 138개소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이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외국인들이 한글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우리는 자부심을 느낄만합니다. 캘리그라피는 한글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합니다. 캘리그라피를 통해 세계적으로 한글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는 인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캘리그라피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구상중이다.
이 작가는 "기회가 된다면 프랑스 에펠탑과 미국 뉴욕 등지에서 한국어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싶다"며 "캘리그라피가 한글의 무한한 독창성과 예술성을 알리고, 일반대중은 물론 세계와 교감하는 감성언어로 자리잡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신나영 기자 creamy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