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드라마 <도깨비>대사 중에서

서울에서 온 지인들과 제물포구락부에 들렀다. 구락부가 클럽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걸 알고 신기해하며 내부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개항기에 각국 사람들이 구락부에 모여 사교모임을 가졌던 곳이라는 설명을 곁들이자 호기심으로 눈빛이 빛났다. 나올 때는 팸플릿까지 챙겨 나왔다. 인천에 여러 번 와 봤고, 자유공원도 올라왔지만 정작 제물포구락부는 처음 와 본다고 했다. 이왕 여기에 들렀으니 방명록에 이름을 쓰라고 내밀던 나는 앞선 사람이 이름을 쓰고 옆에 한 줄 써 놓은 글귀를 보고 놀랐다. '날이 좋아서'였다. 최근 한창 인기 있었던 드라마 <도깨비>의 대사였다. 앞장을 넘기니 '날이 좋아서'라는 글귀가 여러 번 눈에 띄었다. 구락부 앞에서 두 남자주인공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을 나도 보았다. 보면서 바로 제물포구락부인 줄 알았다. 많은 이들이 드라마를 보고 이곳을 찾아왔고 서명을 하고 간 것이었다.

짐작대로 인천시에서 드라마 촬영지를 엮어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남아 관광객들에게 적극 홍보하겠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미 인천시는 작년에 중국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월미도에서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먹던 것처럼 치맥 파티를 연 적이 있었다. 인천의 곳곳을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 속에서 만나는 일은 자못 흥미롭다. 또 지자체에서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뭐라 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의미를 새기는 일은 같은데 활용 방안에 가면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제물포구락부에서, 아트플랫폼에서 포토존을 세우고 사진만 찍게 할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그 장소가 가지는 의미까지 함께 알고 가는 계기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면 좋겠다. 사진 찍는 장소가 자신들이 아는 의미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면 그 지역에 대한 애정은 단번에 달라지는 것이다. 풀꽃도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야 한때 반짝 인기를 끌다 끝나는 장소가 아니라 내내 기억되는 장소가 되리라 생각한다. 날이 좋거나 좋지 않거나 모든 날이 눈부시려면 말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