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일은 미완성을 의미하지만 죽음은 일반적으로 삶의 완성된 단계로 규정한다. 개인의 죽음은 사회적 현상으로 공유하게 된다. 장일과 장지를 결정하고 호상(護喪)은 부고를 낸다. 인간에게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죽음은 이렇게 공동체적 성격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타인의 사건으로 경험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특히 노인들에 있어서 죽음에 대한 태도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수용하고 두려움 없이 죽음에 직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웰다잉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추세다.

최근 고령화의 세계적 추세에 따라 죽음준비교육에 대한 연구와 실천도 확대되고 있다. 구미 선진국에서는 죽음준비교육을 이미 학교교육에 흡수해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대학을 비롯한 종교기관, 문화센터, YMCA 등에서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이 일반화됐다. 독일은 학교에서 '인간의 성장과 노화' '죽음' 'AIDS' '자살과 안락사' 등의 교과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일본은 일찍이 '죽음의 임상연구회' 등이 조직돼 활동하고 있다. 또 홀로 사는 삶에 대비하기 위한 '예비 과부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대학과 종교기관 등을 통해 몇몇 강좌가 개설됐으나 지속적인 정규강좌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유럽에서 태동한 '데스카페'(Death Cafe)가 확산되고 있다. 젊은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다. 편안하고 사람다운 죽음에 관한 토론뿐만 아니라 죽음을 올바로 준비하는 의미의 '슈카쓰'(終活)의 하나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일본 조지대학의 알폰스 테켄 교수는 1975년 개발한 <죽음의 철학> 교과목에서 '죽음의 의미 연구를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며, 이를 통해 개인의 생사관을 확립한다'는 학습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라 하더라도 죽음 앞에 후회한다면 절망의 인생일 뿐이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죽음으로 종료되는 우리의 인생도 허무하다. 하지만 플라톤은 죽음은 영혼불멸의 상태로서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이데아의 세계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웰빙의 이면에 인생을 살펴보고 죽음의 의미를 생각할 '쉼'도 필요하다.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