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경기 사회부장
지난달 26일 안성에서 중증 결핵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아온 60대 기초생활수급자가 우리사회의 외면 속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OECD 국가 중 결핵발생률과 사망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나라에서 60대 중증결핵환자 사망은 국가 공공의료체계의 허술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공공의료도 외면한 기초생활수급자
기초생활수급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사망한 이모(61) 씨는 지난해 12월23일 경기의료원 안성병원에서 결핵판정을 받고, 격리병동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나 대학병원으로 이송되는 같은 달 28일까지 5일 동안 길거리를 헤맸다. 그는 5일 동안 안성병원-집-목포국립병원-안성의 한 대학병원을 오가며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한채 병원을 찾아 삼만리를 헤매야 했다.

왜 그랬을까. 안성에 대학병원이 없던 것도 아니고, 공공의료기관이 없던 것도 아닌데 왜 목포까지 내려가야 했는가. 그 이유는 그가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것이다. 이 씨가 치료받으러 간 목포국립병원은 결핵환자 무료치료 병원이었다. 지난해 7월부터 결핵은 어느 병원에서든 무료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병원 측의 판단실수 인지, 병원이 정책을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씨는 목포국립병원까지 내려가야 했다. 그리고 다시 안성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세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결핵환자 발생시 격리시키고 위급상황인 경우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시켜야 한다는 정부의 지침은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이 씨는 안성병원에서 퇴원 조치된지 35일 만에 결핵악화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경기도 공공의료 강화 '공염불'
지난해 7월 경기도가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안전망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공공의료 시행 계획'을 발표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감염·재난·응급의료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경기도의료원이 보유한 12실 19병상의 감염병 격리병상을 오는 2018년까지 36실 107병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또한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안전망을 강화를 위해 경기도의료원 본부에 보건의료복지 연계사업 추진을 위한 통합지원센터를 구축하고, 현재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등 전국 6개 병원에서 시범운영 중인 보건의료복지 연계사업(301네트워크사업)은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을 발굴, 의료서비스와 함께 적절한 지역복지 자원을 연계해 보건·의료·복지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경기도 계획대로 감염병 격리병상을 확대하고 취약계층 의료 안전망 연계사업이 추진됐다면, 또 기초생활수급자에 제대로 적용됐다면 이 씨가 과연 억울한 죽음을 맞았을까. 경기도가 운영하는 6개 의료원 중 하나인 안성병원은 매년 20억여 원을 지원받고 있지만 경영이 어렵다고 말한다. 격리병상을 일반 환자들에게 내준 것도 병원경영상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했다.
그럼에도 경기도는 감염병 응급서비스 강화를 위해 격리병상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격리병상도 일반환자들에게 내주고 있는 판에 경기도의 공공의료 시행 계획은 병원경영을 걱정하는 공공의료원의 생각과 많이 다른 듯하다. 경기도 정책이 '공염불'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사회에는 낭만닥터가 없는가
얼마전 지인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최근 종영된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가 이야기가 나왔다. 식상해 보이는 메디컬 드라마가 40~50대 남자들의 술자리 화제로 떠오르는 것도 드문 일이다. <낭만닥터〉는 27.6%(닐슨코리아 제공)의 시청률로 종영했다.〈낭만닥터>는 '외과 수술계에서 전설'이었던 김사부(한석규)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대학병원급인 거대병원에서 쫓겨나 강원도 시골 마을에 자리한 작은 병원을 무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리사회에 쌓여있는 각종 부조리를 작은 병원과 거대병원 간 싸움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군대 구타로 사망한 탈영병을 막으려는 군 관계자와 이익에 눈먼 거대병원 원장의 가짜 사망진단서 작성 요구는 마치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을 연상케 한다.

또한 메르스 파동 장면에서 우왕좌왕할 때 김사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통해 돌담병원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헌신하는 모습은 2015년 정부의 메르스 파동 속수무책 대응을 꼬집었다. 한마디로 '사이다'였다.

공공의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공공의료기관의 중증 결핵환자 치료 방임사건은 우리사회가 얼마나 후진 사회인지 보여줬다.<낭만닥터〉는 막을 내렸지만 거짓과 반칙이 난무하는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한 김사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