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정보 공유·가격담합 정황 드러날라…메신저 대화 내용 '폭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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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개구리 두 마리가 우유 속에 빠졌는데, 그중 한 개구리는 죽기 싫어서 열심히 움직였더니 우유가 치즈가 돼 살아 나올 수 있었다."

올해 초 광주의 모 지역 약사회장이 정기총회에서 신년사를 겸해 한 말이다.

이 약사회 소속 약사들의 은밀한 모바일 메신저(카카오톡) 단체 대화 내용이 최근 외부로 유출되면서 '단속정보 공유', '약품 가격 담합'의 정황이 드러나 경찰이 수사 착수 여부를 검토 중이다.
 
결국 경찰 수사결과 약사들이 단속정보를 공유하고, 가격을 담합하려고 열심히 움직였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들이 열심히 움직인 대가로 의약품 소매생태계는 소비자들에게는 치즈가 아닌 상한 우유가 된 셈이다.

유출된 모바일 메신저 대화 내용을 토대로 특정 지역 약사들의 민낯을 엿봤다.


◇ "우리 약국 단속반 왔다 갔다" 단속정보 실시간 공유한 약사들

"오늘부터 지도 점검합니다. 위반사항이 없도록 잘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지난해 12월 19일 광주 한 지역 약사회장의 당부와 함께 카카오톡 단체대화창에 단속 주체 보건소가 사전에 미리 약사회에 알려준 단속일정을 포함한 '단속 경보'가 발령됐다.

이후 약사들의 단속정보 공유가 시작됐다.

"우리 약국 왔다 갔습니다. (단속반이) 방금 차 시동 걸었습니다", "우리 약국은 아직입니다" 등 단속정보가 약사들의 공유로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단속을 피하는 요령도 서로 주고받았다.

단속반이 무엇을 주로 살피는지 공유하고, 1주일에 1회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할 '의료용 마약류 저장시설 점검부'를 어떻게 급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문답하기도 했다.

약사회장은 단속반원과 지속적으로 통화해 단속정보를 파악하는 정황을 보이기도 했다.

해당 약사회장은 "보건소에서 전화 왔는데 '천불 난다(화가 난다)'고 한다. 두 곳 단속에 두 곳이 적발됐다"고 전하며 재차 주의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약사감시는 내일로 마무리한다', '내일은 시내 쪽 돌 계획이다', '쇼당(합의) 봐서 내일까지만 단속 돈다' 등 단속반이 직접 알려주지 않으면 알기 힘든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약사회 소속 약사들의 찬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단속을 무사히 넘긴 약사들은 정보를 공유해준 약사회장에게 "이번에 (단속) 안 오면 독일 밀맥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하거나 "수문장 회장님 덕분에 몇 가지 주의사항 듣는 거로 잘 넘어갔다"며 치켜세웠다.

단속에 대한 정보 공유는 '공무원은 다섯 시 반이면 일 안 한다'는 말과 함께 끝났다.

해당 지역 약사들은 52곳을 전수조사한 보건소 단속에서 결국 4곳만 단속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에 대해 보건소 담당 공무원은 "이번 지도·단속은 계도 목적이 강해 사전에 지역 약사회에 공문을 보내 단속사실을 미리 알렸다"며 "단속과정에서 약사회장이 전화를 수시로 걸어와 통화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단속정보를 흘리거나 협의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 "다 같이 지키면 매출 늘고 좋다"… 약품가격담합 의혹

일제 점검의 여파를 무사히 넘긴 약사들 사이의 대화에서는 약품 가격 담합한 정황도 엿보였다.

약사 중 일부는 "○○○ 얼마에 파나요?"라고 묻고 답하며, 지나치게 싸게 약품을 파는 약국에 대해 "미쳤다. 집세·종업원 봉급·세금을 어떻게 내느냐?"고 성토하기도 했다.

애매한 약값은 다른 약사들에게 문의해 판매가를 정하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들은 "얼마 전에도 4개 약국 대표들인 만나 적정 가격을 지키자고 시도했으나 잘 안됐다"며 "가격이 그나마 지켜지고 있는 품목이라도 유지하자"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모두 가격담합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한 약사는 "(약값을) 다 같이 지키니까 오히려 서로 매출도 늘고 좋던데요"라며 과거에도 가격담합을 시도했던 정황을 암시하기도 했다.

약사회장은 또 다른 글에 "약사의 적은 약사가 아니다. 서로 신의를 지켜 상부상조하면 우리의 권리를 지키고 침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약사들은 부산에서 단속정보를 공유하다 적발돼 입건된 약사들에 관한 기사를 공유하고 '우리도 피해 보면 안된다'며 대화방을 '폭파'(외부유출을 염려해 메신저 대화창을 모두 삭제하는 행위를 말함)했다.

해당 약사회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 전화통화를 시도했지만 "약사회장이 부재중이니 다시 전화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끊긴 전화는 다시 울리지 않았다.

경찰은 단속정보 공유, 약품 가격 담합을 암시하는 대화 글을 확인하는 등 수사 착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