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쁜 식물들일 경우에는 눈에 띄는 대로 뽑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어린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앗들이 있었다. 바오밥나무의 씨앗이었다. 그 별의 땅은 바오밥나무 씨앗 투성이었다. 그런데 바오밥나무는 너무 늦게 손을 대면 영영 없애 버릴 수가 없게 된다. 별을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뿌리로 별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그래서 별이 너무나 작은데 바오밥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산산조각 나고 마는 것이다. "그건 규율의 문제야." 훗날 어린 왕자가 말했다.' - 생텍쥐베리 <어린 왕자>중에서

얼마 전 서울 시민청 갤러리에서 신미식 사진가의 마다가스카르 사진전을 보았다. 10년 동안 아프리카에 있는 마다가스카르를 오가며 사진을 찍었고, 그곳에 어린이 도서관을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도록에도 마다가스카르 어린이 도서관 후원 전시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그의 사진 속에 바오밥나무 사진이 있었다. 몇 천 년을 사는 나무, 굵은 몸통 끝에만 잔가지가 달려 마치 하늘에 뿌리를 뻗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 어린왕자에 등장해서 내 상상력을 자극하던 그 바오밥나무. 어마어마한 굵기와 길이로 뻗은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몇 사람의 존재는 희미하기만 했다.

집에 돌아와 어린왕자 책을 펼쳐 바오밥나무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을 펼쳐보았다. 내 기억은 거대한 바오밥나무 세 그루의 뿌리가 행성을 감싸 쥐고 있는 그림으로, 바오밥나무가 뿌리로 별의 구멍을 뚫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번에 다시 펼쳐들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문장은 조금 달랐다. '바오밥나무는 너무 늦게 손을 대면 영영 없애 버릴 수가 없게 된다. 별을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다'와 "그건 규율의 문제야"라는 말이다.

바오밥나무가 뿌리를 완전히 내리게 되면 제거하기 어렵다. 뿌리를 내리기 전, 씨앗일 때 제거해야 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한번 죄를 범하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쉽다. 범접할 수 없는 생을 살고 있는 아름답고 우람한 바오밥나무를 보며 뉴스 속 '무서운 씨앗'를, 제거를, 규칙을 떠올려야 하는 오늘의 내가 좀 슬프게 생각되는 날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