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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검은 명단'이 돌았다. 블랙리스트 관련 지난 토요일 새벽, '모르쇠' 전직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됐다. 황교안 대통령 직무대행은 조 장관의 사표를 즉시 수리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문화권력의 몰락을 가져온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사태는 국정농단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커졌다.

1만 명에 이르는 문화예술계 인사를 좌파로 낙인한 리스트는 사상·표현·언론의 자유를 짓밟은 과거 군부정권의 악령이다. '좌파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정부 예산을 지원하지 말라'니 노벨상 후보 고은 시인과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 영화감독 박찬욱과 배우 송강호 김혜수 등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개탄했을 것이다.

시민의식의 발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하는 정부의 비선정치, 흑막정치를 청산해야 한다. 청와대가 무슨 신비주의의 산실인 것처럼 정부의 초동 대처도 항상 '블랙리스트는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는 답변이다. 하지만 결국 시민세력의 정치화를 차단하는 수단이었다는 것이 온 천하에 들어나곤 했다.

사실 블랙리스트의 원조, 고향은 인천이다. 블랙리스트는 군부독재 시절 노동계 통제의 수단이기도 했다. 1978년 인천 동구 만석동에 있는 동일방직 인천공장의 해고자 126명의 신상이 털려 전국 사업장에 배포된 사건이 시초였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기업과 정부의 입김이 동원됐다. 원풍모방, CDK, YH무역, 태창섬유, 청계피복, 서통, 무궁화섬유, 반도상사, 경동산업, 도시산업선교회, J.O.C 등은 노사분규와 관련된 블랙리스트 현장으로 기억된다.

또 1980년대 초반 대우자동차, 한국후지카, 대림통상 등 수많은 생산현장에 대학생 위장취업이 파고들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중앙대, 인하대, 동국대 등 20여 대학의 위장취업대학생들이 적발되기도 했다. 전태일의 분신 이후 경인지역은 대학생 위장취업 노동현장이었다.

언론도 검은 명단의 피해자다. 1980년 언론사 통폐합과 언론인 해직사건 등은 개인과 가정, 더 나아가 사회를 무너뜨린 패륜적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기록되고 있다. 오늘날 문화 '빨간 딱지' 블랙리스트와 군부정권의 탄압 수단이었던 '살생부'는 영역이 다를 뿐 인권 억압이라는 본질은 같다. 국가위기를 극복할 버킷리스트가 절실하다.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