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뉴욕주립대 1회 수석졸업 박민수씨가 활짝 웃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남미에서의 자유분방했던 삶이 열정을 키웠을까. 한국뉴욕주립대학교 제1회 졸업생 박민수(23)씨는 청춘의 한 장을 촘촘하게 짜넣고 있었다. 그는 함께 졸업하는 동기 가운데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아 수석 졸업생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남미에서 일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16년간 페루, 파나마, 콜롬비아, 파라과이, 칠레, 멕시코를 2~3년 주기로 오가며 살았다. 남미 생활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틀에 박힌 학교생활을 보내는 한국과는 약간 달랐다. 그 덕분일까. 청년은 자기 보폭이 보다 넓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2012년 3월 인천 글로벌캠퍼스에서 문을 연 한국뉴욕주립대는 국내에 자리 잡은 최초의 미국 대학교다. 그는 13일 졸업생 대표로서 졸업사를 읽어 내렸다. 국제도시를 표방하는 인천에서 첫 외국대학교가 졸업생을 배출하는 순간이었다. 그에게 학교생활과 지금까지의 삶, 꿈에 대해 물었다.


▲청년, 인천 송도에 자리 잡다

그는 남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행히 영어와 스페인어를 어릴 적부터 배운 탓에 자유롭게 소통하며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남미의 문화는 비슷했다. 축구를 좋아했고, 열정적이었으며, 자유로웠다. 한국처럼 학생에게 강요되는 '틀' 같은 건 없었다. 스포츠와 취미활동을 자유롭게 즐기면서 공부에도 집중하는 환경이었다.

"학원이라는 게 없었어요. 각자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환경이었죠. 그렇다고 아이비 리그 같은 좋은 대학교에 못 가는 것도 아니었죠."

남미에서 살았어도 부모님은 그에게 한국 사람이라는 점을 항상 강조했다. 한국에 들어온 까닭도 대학만은 한국에서 다니고 싶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국뉴욕주립대가 개교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사실 한국어로 자기소개서를 쓰려니 잘 안됐어요. 글을 써본 적이 없다보니 쉽지 않았었죠. 마침 영어로 강의하는 미국대학교가 인천에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죠. 학교에는 저와 같은 꿈을 꾸고 생각하는 동료들이 많았어요."

그는 기술경영과에 들어갔다. 학교와 학생, 교수의 소통이 자유로웠고, 교육과정도 만족스러웠다. 2학년이 되자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1년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학교생활의 핵심은 일명 RC(레지덴셜 컬리지·Residential College)라 불리는 기숙형 교육프로그램이었다. RC는 입학부터 졸업까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나는 누구인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찾아가는 동시에 각 분야 명사들의 강의를 듣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 학교에서 왜 왔는지, 미래에는 뭘 해야 하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찾아주는 계기가 됐던 프로그램 이예요. 저는 학교와 함께 성장했지요. 학생들은 모두 학교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사업을 시작하다

그의 첫 사업은 수제화 브랜드였다. 2015년 수제화 브랜드 '도체스터(Dorchester)'를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마침 스타트업 붐이 불고 있던 시기였다. 신발이 좋아 동대문을 오가다가 시작한 일이었다.

"사실 신발을 참 좋아해요. 제가 신고 싶은 신발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머리 식히러 두 달쯤 동대문을 다녔거든요. 시장을 새벽 내내 돌며 신발을 보고, 사고, 상인들과 친해졌죠. 쇼핑에서 사업까지 발전했던 거죠."

학교는 사업 시작 단계부터 그를 도왔다. 패션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뉴욕패션기술대학(FIT)에서 매년 여름에 진행하는 '섬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사업 방향에 대해서는 당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팀원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학교 도움도 컸어요. 신발업계의 유명 브랜드 대표님을 소개해 주거나, 벤처 투자자를 만나게도 해줬죠. 제가 사업을 즐길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경험이었어요. 끊임없이 도전하고, 생각하고, 실행하는 재미를 알게 된 거죠. "


▲"남미 발전에 기여하고파"

그는 한국뉴욕주립대 대학원에 진학한다. 사업가로서 갖춰야 할 지식을 심도 있게 공부하기 위해서다. 그는 돈을 많이 버는 성공에만 가치를 두진 않았다. '왜 사업을 하느냐'에 대한 대답은 나눔에 있었다.

"여기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에게 영향을 받았어요. 다들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리더로서 발전을 이끌고 싶어 하더라고요. 저도 남미에서 사업가로 활동하며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싶어요. 한국과 남미의 가교 역할도 하고 싶고요. 개발도상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리더로 학생을 키운다는 게 우리 학교의 미션이자 비전이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사업으로 나눈다는 꿈을 꾸고 있어요."

/박진영 기자 erhis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