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녀를 '미스 사이공'이라고 불렀다. 2006년 베트남 하이퐁시의 공무원 '위엔 칸 링'은 인천시청에서 6개월가량 파견 근무를 했다. 이름이 입에 착 달라붙지 않아 그냥 '미스 사이공'라고 불렀지만 그 뮤지컬의 주인공 못지않은 미모를 갖춘 재원(才媛)이었다. 그녀가 근무했던 국제협력관실은 당시 필자의 사무실과 같은 시청 본관 4층에 있었다. 우리 팀 여직원들과 화장실에서 얼굴을 튼 후 그녀는 자주 우리 사무실을 찾았다. 그 때 짧은 영어로 대화하면서 '하이퐁'이란 도시에 대해 어렴풋 알게 됐다. 그녀는 한글 공부에 열심이었다. "나는 베트남에서 온 인천 사람입니다"를 배워서는 마주칠 때마다 건넸다.

베트남의 3대 도시 하이퐁은 수도 하노이 동남쪽 100㎞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인천시와 1997년 9월 자매결연을 맺었다. 올해 20주년이다. 자매도시와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하이퐁시 이전에 인천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베트남 도시가 있다. 베트남을 '월남(越南)'이라고 부르던 50년 전, 인천시는 퀴논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맹호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양 도시는 맹호부대 사령관의 주선으로 결연을 맺었다. 이 부대가 인천항을 통해 파병된 인연을 엮은 것이다.

월남 전역에 포연이 가득했던 1967년 3월6일 김해두 인천시장은 퀴논 중심가의 한 극장에서 진행된 결연식에 참석했다.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중장과 퀴논이 속한 지역의 성장(省長), 그리고 미군 고위 장성들이 함께했다. 양 도시는 두 달 후 인천에서 결연식을 재차 갖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전쟁 상황이 악화되면서 계속 미뤄지다가 결국 1975년 월남이 패망하면서 자매결연 조인서는 휴지조각이 됐다. 당시 퀴논은 한국과 혈맹이었던 남베트남(월남)에 속해 있었고 하이퐁은 맹호부대와 싸웠던 북베트남(월맹)의 관할 지역이었다. 역사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음을 다시한번 보여줬다. 지난 17일 유정복 인천시장은 경제·문화 교류 협력 강화 등을 위해 하이퐁시 방문길에 올랐다. 현지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는 데 그 속에 '인천 사람' 위엔 칸 링이 있었는 지 궁금하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