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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입구에 들어서자 푸근한 인상의 남성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가볍게 눌러 쓴 카고 모자와 얼룩이 묻은 안경, 해진 점퍼, 까칠하게 자란 수염이 자유분방한 성격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네요. 밥 딜런을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제 팬이시던가…."

웃을 때마다 선명하게 잡히는 주름의 눈웃음과 툭 던지는 농담은 자칫 그를 '가벼운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음악 얘기만 나오면 달라지는 그의 눈빛은 차라리 날카로웠다.

방송작가부터 싱어송라이터, 음악평론가, 작가, 시인, 공연기획자 구자형(62)을 수식하는 단어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수식어들을 관통하는 단어가 있으니 그 것은 바로 '음악'이다. 그가 원하는 호칭도 '음악여행가'다.

구자형 작가가 세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중음악가 '밥 딜런'의 생애를 조명한 책을 펴 냈다. <아무도 나처럼 노래하지 않았다>를 발간한 그가 인천에 온다. 20일 오후 8시 인천 신포동 재즈카페 버텀라인에서 북콘서트를 갖는 그를 서울에서 만났다.

"미국 나사(NASA)는 우주선을 쏘아올려 우주와 소통하고 한국의 구자형은 하늘에서 보내는 메시지를 받아 음악으로 소통합니다." 그와의 대화는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제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안 인천분이 연락을 해왔어요. 밥 딜런은 부드럽지만 강인한 메시지로 사회와 끊임없이 대화하길 원했어요"

재즈카페 버텀라인을 자주 드나드는 한 손님의 제안을 받았다는 구자형은 버텀라인의 캐릭터나 역사를 안 뒤 흔쾌히 수락했다.

"버텀라인이라는 카페와 자유를 추구하는 밥 딜런의 모습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밥 딜런의 음악과 함께 그의 삶과 음악 철학을 소개할 생각입니다."

구 작가는 "밥 딜런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놨으며 그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구자형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구 작가는 "밥 딜런은 개인주의자이지만 계속해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빌어 그 누구도 '갑'이 돼서는 안 된다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밥 딜런을 알게 된 건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라는 곡을 접하면서 부터다. 중학생 때 '평화'를 주제로 하는 이 곡을 들은 그는 '이런 곡이야 말로 생각하는 음악이자 영혼이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대중음악이 통속적이고 오락적 가치만을 추구하던 당시, 그의 노래는 사회에 뼈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통 창구였던 것.

"어느 날 문득 바람과 음악이 이야기를 들려주더라고요. 전 글로 옮기기로 했죠."

당시 14살 소년은 봄소풍을 갔다가 우연히 자니 호튼의 'All for the love of a girl'을 듣고 팝송에 매료된다.

"차라리 충격이었죠. 어떻게 이런 노래가 세상에 있나 싶었어요. 그 때 이 노래 안 들었으면 그 감성과 감정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거에요."

그는 죽기 전 이 '기분 좋음'을 글과 음악으로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기타줄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1970년대 번안곡이 유행하던 때 밥 딜런의 '자유와 평화'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구 작가는 우리 가락을 포크에 접목해 우리만의 포크가요를 만들자며 록밴드 '잠수함'을 결성한다. 5년 뒤 '잠수함은 한국의 사회를 상징하고 그 사회가 순수와 진실이라는 산소가 희박해지면 노래로써 정화하고 경종을 울리라는 뜻으로, 참새는 진실을 노래하는 힘없는 서민을 말한다'는 의미를 담아 '참새를 태운 잠수함' 음반을 낸다. 그리고 지금까지 음악 모든 분야에 이름을 올리며 끊임없이 한국 언더그라운드 흐름을 만들고 있다.
"저요? 아마 밥 딜런을 몰랐다면 어정쩡한 낭만주의자로 떠돌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는 인천에 대한 인상과 인천과의 각별한 인연을 언급했다. "서양문화가 가장 먼저 들어온 인천은 오래전부터 자유의 향기가 불어온 땅이지요."

그는 "부평 미군기지가 대중음악의 통로 역할을 톡톡히 해준 덕분에 한국의 음악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부평은 미군과 함께 호흡했으니 자연히 그들의 음악도 가장 빨리 접하지 않았겠어요? 다른 지역은 방송으로만 들었으니 적어도 6개월은 뒤쳐졌을 거구요."

구자형은 "김홍탁, 송창식 등 통기타 대부들도 인천에서 나왔다"며 "음악만으로는 이미 세계화를 이룬 곳이 바로 인천이다"라고 덧붙였다.

구 작가는 대중음악의 산실인 인천이 앞장서 가치를 지켜야 하는데 역으로 흐르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현재 신포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두고 한 얘기다.

"신포동만 해도 음악 공간이 많았지만 하나둘씩 문 닫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7080세대들이 스무 살 때 듣던 노래와 그 문화가 담긴 공간을 내팽개친다는 것은 자신의 청춘을 폐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구자형은 "버텀라인과 같은 공간은 정말 소중한 자산"이라며 "재즈를 듣고 싶으면 단연 버텀라인이 먼저 떠오르듯 음악을 온전히 들을 수 있는 곳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북콘서트는 '학교 도서관 저널'의 연용호 편집장과 팝포크 가수 황명하, 싱어송라이터 이진호가 함께 무대를 꾸민다.

/글·사진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


구자형은?

● 출생 : 1954년 3월 9일
● 데뷔 : 1989년 '새벽' 작곡
● 음반기획 및 제작 : 청년문화 30주년 기념 편집음반, 구자형이 뽑은 위대한 한국가요,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 이동원의 불새, 참새를 태운 잠수함 1집 등
● 공연기획 및 연출 : 1975년 '참새를 태운 잠수함', 1976년 '이것이 포크다!', 1996년 '한국모던 포크 콘서트', 1998년 '한국청년문화 30주년 기념 콘서트' 및 '6898콘서트' 등
● 경력 :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유열의 FM모닝쇼', '정애리의 영시의 플랫폼', '이수만의 젊음은 가득히', '송승환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 라디오 및 TV 구성작가.
● 수상경력 : 1992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 작가부문 특별상, 2001년 MBC 방송대상 라디오 작가부문 특별상
● 작품활동 : <김현식 내사랑 내곁에>, <구자형이 만난 가수들>, <안개편지>, <누룽지가 피자에게> 등
● 현재 : KBS 한민족방송 '이소연의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와 KBS1 라디오 '이성민의 생방송 일요일 아침입니다'에 음악평론가로 출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