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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20년 넘게 살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인천에서 잡지 만드는 일을 하게 되면서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어디에서 인천을 찾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인천을 알고, 사랑하게 될 것인가란 것이었다. 가끔 해외동포들 가운데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와 대한민국을 비교하곤 한다. 한국이 우수한 것 가운데에는 대중교통, 치안, 의료보험 같이 제도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 이외 생활에 편리한 것, 좋은 것이라고 말하며 그들이 상상하는 곳은 서울이란 걸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실제 인천에서 살아보니 좋은 것은 전부 서울에 있었고, 인천만의 것은 찾기 어려웠다. 사실, 이것은 인천만이 아니라 전국의 고만고만한 도시들 어디나 마찬가지 문제였다. 주말마다 인천을 알기 위해 발품을 팔며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여기가 인천'이란 마음이 들게 했던 곳이 바로 북성포구와 배다리 일대였다.
우리의 몸은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인간의 시간, 역사는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에게 승리하는 첨단기술문명 시대를 살아가지만, 인간은 여전히 농사를 지어 쌀을 얻고,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 냄새를 맡으며 행복감을 느낀다. 그 행복감은 떠돌이 인류가 처음 한곳에 정착하고, 농사를 짓게 되고, 도읍을 이루면서 품었던 감각이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결과이기도 하다.

도시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도 이와 다를 바 없다. 한편으론 첨단의 시간을 살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 도시가 처음 탄생하던 순간을 탯줄처럼 이어가는 것이다. 아이가 언제까지나 성장하지 않고, 어린 시절에 머물 수 없는 것처럼 도시도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물리적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됐어도 특정한 가족과 함께 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다면 그 사람을 우리 자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화적 정체성을 함께 하지 못하는 민족을 민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북성포구를 매립해 얻게 될 한 줌의 이익보다 그로인해 잃게 될 인천의 가치를 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황해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