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건축그룹 [tam] 대표
▶ 바다와 도시
대량생산 체제가 들어선 이후, 다른 나라와의 교역이 중요해지면서 이들이 들고 나는 관문으로서의 항구는 상품의 생산거점 못지않게 중요한 장소가 됐고, 물자와 자본이 모여들고 사람들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자연스레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어느 나라든 수도 다음으로 큰 도시는 항구도시일 가능성이 크고, 그런 도시는 그 나라에서 경제적으로도 가장 풍요로운 도시일 가능성 또한 높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호주의 시드니, 이탈리아 나폴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는 그 아름다운 풍경으로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관광명소이지만, 이들은 또한 큰 규모의 국제무역항이기도 하다.

▶ 인천의 바다
인천은 우리나라 제2의 항구도시다. 하지만 인천에서 바다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 인천의 바다는 원료를 수입 가공하는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배후 공업지역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바다라는 좋은 자원을 단순히 공업지역을 지원하는 역할에만 한정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승기천을 따라 가다 보면 쉽게 볼 수 있었던 염전들은 매립돼 1985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던 남동공단으로 바뀌어갔고, 아암도에서 해안도로를 따라가며 보이던 바다풍경은 2000년부터 시작된 송도신도시 매립공사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그나마 바다를 직접 접할 수 있는 곳은 연안부두와 월미도 정도지만, 그마저도 잠깐 바람이나 쐬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항구도시에서 바다가 시민들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셈이다.

시민과 단절된 바다는 매립을 통해 육지로 만들어 개발하는 방식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많은 정책결정자들은 갯벌이 넓게 자리잡고 있어서 수심이 얕은 인천 앞바다는 매립을 통해 쉽게 토지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영종도의 '운북복합레저단지' 앞쪽의 바다를 열심히 매립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바다 전체의 관리주체인 해양수산부마저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지난 여름 인천역이 입지규제최소구역으로 지정됐다. 이번에 지정된 곳은 월미도, 인천내항, 차이나타운이 연결되는 곳이다. 여러 기사들이 나왔고, 대부분의 기사에 나온 이미지는 인천역 복합역사 개발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인천역 자리에 여러 시설들이 복합된 큰 시설이 들어앉은 조감도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진행되는 개발사업의 성패는 이런 복합역사 개발보다는 내항의 재생을 통해 단절됐던 바다와의 접점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수인선과 연결된 인천역에 복합역사를 개발하고, 그 여파를 이용해 주변부 개발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는 전략은 기존에 우리가 많이 봐왔던 계획이다. 교통의 요지인 역을 중심에 놓는다는 이야기이나, 이곳은 그런 접근 방식에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역은 어딘가를 가기 위한 징검다리일 뿐이지 찾아가고자 하는 목적지 자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함부르크 Hafen City, 영국의 Sheffield 등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쇠퇴한 도시를 재생한 사례처럼 내항의 재생에 좀 더 많은 역량과 고민을 집중한다면, 인천역 주변은 자연스럽게 활기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