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앞바다에 있는 많은 섬들 중에 최근 언론의 조명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은 연평도일게다. 긴박한 남·북관계 속에 서해5도 중 유독 연평도와 관련된 일들이 많았다.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두 차례에 걸쳐 북방한계선(NLL) 남쪽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남·북한 해군 사이에 총격이 오가며 많은 사상자까지 발생했던 연평해전과 2010년 11월 북한에 의해 느닷없이 자행된 연평도 포격이 그 것이다.

당시 이 사건들은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을 끌었을 뿐 아니라 남·북 간에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를 불러왔고, 전 국민의 공분을 샀었다. 연평도는 또한 일제 강점기말 절정에 달했던 조기파시로도 유명하다. 조기조업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많을 때는 수천 척의 어선들이 몰려들기도 했던 연평도 조기파시는 그 많던 조기가 자취를 감추면서 1950년대 막을 내렸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이달부터 10개월 간 연평도 민속조사를 벌인다는 보도다. 3명의 연구원이 상주하며 섬의 내력과 주민들의 생활방식, 특징 등을 면밀히 조사, 기록할 계획이다. 사회분위기가 급변하면서 옛 것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그런 차제에 이뤄지는 연평도 민속조사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천 앞바다 섬들은 저마다 숱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

흔히 알려진 것만 해도 신라와 당나라의 백제 정벌시 서해를 건너온 당나라 군대가 도착한 곳이 덕적도(당시 덕물도)이며, 대청도는 고려시대 고려와 원나라 고위관리들의 단골 유배지였다. 고려의 수도 코 앞에 있던 영종도(당시 자연도)는 송나라 사신들이 입경(入京) 전에 잠시 머물며 먼 뱃길에 시달렸던 객고를 풀던 장소였고, 백령도와 용유도 등은 조선시대 유명한 말목장이었다.

인천은 지금 섬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한 사업이 한창이다. 궁극적인 지향은 정주민들의 삶의 여건을 개선하고 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이는데 있다. 관광객들을 위한 위락·편의시설도 좋지만 오랜 세월 섬이 간직해온 역사와 문화의 발굴·채집·보존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스토리와 텔링이 있는 진정한 의미의 가치재창조가 될 수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