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경제연구소장
▲ '펜실바니아 가제트'에 실린 만화

인간 역사 이래로 태평연월을 구가한 나라와 시대의 사례는 많지 않다. 인구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그런 사례는 더욱 드물어진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일부 국가가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경우가 현재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인구가 작은 나라들이고 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그들의 과거의 기복을 고려할 때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많은 인구가 고르게 만족하고 그 상태를 지속시킨다는 것은 변덕 심한 인간의 원천적인 속성상 지극히 달성하기 곤란한 과제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도 한 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가 돼 후발개도국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고 지금도 우리나라를 발전 모델로 삼겠다고 공언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가 좀 어려운 형국을 헤매고 있다고 해도 절망에 이를 일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위안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각종 매체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고 부러워하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나라들이나, 네덜란드, 스위스, 싱가포르…, 그 밖의 어느 나라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경우와 같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모두 한 때의 지독한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경우가 없다. 지금 모처럼 굴기를 으스대는 중국의 경우도 그 신산했던 시기가 바로 엊그제의 이야기이고, 미국의 대공황과 최근의 금융위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등 덩치 큰 나라들 또한 간단없이 위기를 맞고 극복하는 것이 무릇 인류의 집단적인 삶의 역사다.

결국 한 나라가 위기에서 반전을 이뤄내느냐 그 수렁에 빠져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느냐 하는 차이는 그 집단의 구성원과 리더들이 정신을 차리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차이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러한 선행적인 사례들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한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독립전쟁기념관에는 당시의 한 신문에 실렸던 아주 간단한 만화가 소중하게 전시돼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가 발행했던 1754년 5월9일자 '펜실바니아 가제트'라는 신문에 직접 그려 게재했던 만화다. 이 만화는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영국 군대와 맞서고 있는 초기 미국 독립운동 세력들의 지리멸렬하는 상황을 아주 극적이고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덟 토막이 난 뱀 한 마리, 그리고 그 토막마다에는 당시 전쟁에 참가한 각 주 정부(State)들의 약칭이 표기돼 있다. 그 밑에 아주 간결하게 요약된 "Join, or Die"라는 구호가 적혀있다. 이 문구를 당시 프랭클린의 심정을 짐작해 우리말로 조금 격하게 번역한다면, "뭉쳐라! 아니면 죽어버리든지"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후 이 문구는 세계적으로 각계의 지도자들이 집단의 단결을 선동할 때 즐겨 인용하는 정치적인 구호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귀국 연설에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네다"라고 다소 어색한 한국어 발음으로 번역 인용하면서 한 동안 시중의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개인이거나 집단이거나에 상관없이 인간의 삶에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이 침착하게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개인의 인체나 집단의 조직이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냉정하게 통제해 하나의 해결 과제에 집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집단을 위한 대중적인 명령어로 바꾼다면 "뭉쳐라"라는 외침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목하, 대한민국의 상황이 미국 독립전쟁 시기의 절박함에 진배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한층 더 심각하게도, 무엇을 중심으로, 누구를 상대로 뭉치라고 외쳐야 할 것인지조차 막막한 것이 우리의 오늘이다.

이제는 하나 종교가 돼버렸을 뿐인 쉰내 나는 이데올로기와 무책임한 선동에 절고, 뼛속까지 골병이든 지방색과 패거리 논리에, 오로지 집권의 계산에만 눈이 먼, 넘쳐나는 잡룡(雜龍)들의 분류(奔流) 밖에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는 상황을 향해 "뭉치라"는 외침은 오히려 공허에 공허를 더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쩔 것인가. 우리의 이러한 질곡도 남들이 그랬듯이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고 그래도 뭉칠 수밖에…. 오로지 하루하루를 양심과 순리에 의지해 살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일에 나대고 몰려다니지 않으며, 이 땅의 기본이 돼 오늘을 지켜온 침묵하는 다수들이, 이제 조상대대로 물려온 "이 땅에서 사람이 사는 법"이라는 상식을 중심으로 뭉쳐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이 땅에서 내일도 살아야 한다면, 쭉정이들 중에서도 배탈이 나지 않을 쭉정이라도 "정신을 차려서" 골라내야 하고, 그렇게 이 고비를 넘고 또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기적을 기약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이제 흥분과 선동을 타기(唾棄)하고 서릿발 같은 이성의 깃발을 곧추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그래야 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