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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의 사람냄새] 못된 정부의 못난 합의      

2017년 01월 10일 00:05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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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15일, 우리는 해방됐고, 일본은 패망했다. 전후 우리는 승전국 국민이었을까? 패전국 국민이었을까? 일본의 패망 이후 우리의 처지는 복잡했다. 패전 이후 일본은 조선인 등 옛 식민지 출신자의 일본 국적을 인정해왔다.

당시 일본에 머물던 재일동포는 약 210만명으로 추정된다. 1946년 3월까지 대략 140만명이 귀환했으나 해방 직후의 혼란과 생활난의 이유로 일본으로 되돌아간 사람도 많았다. 분단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들도 갈라놓았고, 남과 북 둘 중 하나를 선택한, 또는 남북 어디도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감시와 억압의 대상으로 삼았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일본은 외국인등록법을 시행해 재일동포의 일본 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한다. 재일동포에 대한 강제 지문날인은 남북대립이 격화하면서 미국의 극동전략과 치안상의 이유로 재일조선인에 대한 감시와 억압을 강화한 결과였다. 지문날인을 거부할 시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만 엔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에 1980년대부터 '지문날인거부운동'이 커다란 이슈로 등장하게 됐다. 한종석 씨가 재일한국인 최초로 지문날인을 거부한 것이 계기가 돼 일본 전역에서 지문날인 거부 운동이 전개됐고, 1만명 이상의 재일동포가 참여했다.

결국 1991년 1월10일,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 정부는 재일동포의 인권을 침해해온 지문날인제도 폐지에 합의했다. 흔히 일제 36년이라고 하는데, 재일동포에 대한 강제지문날인제도가 철폐되기까지도 46년이 걸렸다. 얼마 전 부산 동구가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됐던 위안부 소녀상을 강제 철거했고, 아베 정부는 일본 대사를 귀국시켰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박근혜 정부의 합의가 지켜져야 한다고 말한다. 전후 우리는 승전국 국민이었는지, 패전국 국민이었는지 자신의 처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지금도 우리는 스스로 자주독립국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정부의 잘못된 합의에 대한 거부운동이 필요하다.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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