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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입이 벌어지기 전에, 애써 들어 올린 국숫발들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간신히 걸쳐져 있던 한 가락의 국숫발마저도 흘러내립니다. 아무래도 당신의 혀가 국숫발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듯해서 나는 숟가락을 집어 듭니다. 국숫발들을 뚝뚝 끊기 시작합니다. 오래전, 당신이 내게 처음 끓여준 국숫발들을 뚝뚝 끊어내던 심정과, 지금 국숫발을 뚝뚝 끊어내는 심정은 분명 다르겠지요. 뚝뚝…… 뚝.' - 김숨 소설가의 소설 <국수>

새해, 어르신들에게 사랑의 떡국을 나누는 손길을 보았다. 한 그릇의 떡국이 어느 분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한 끼가 될 지도 모른다. 음식을 나누는 일의 소중함을 잘 안다. 내게도 잊지 못할 음식이 있다. 지난겨울의 동치미가 그것이다.

작년 겨울 나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일을 당했다. 아픔과 고통이 너무 커 잠을 잘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아니, 먹고 자는 일이 죄스러워 할 수가 없었다. 그 즈음 한 시인이 동치미를 보내왔다.

어느 새벽, 목이 탔고, 냉장고를 뒤지다가 동치미를 발견했다. 한 사발의 살얼음이 뜬 국물에 물을 타서 마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를 썰어 집어먹었다. 그렇게 먹고 나니 가슴에 얹혔던 무언가가 쑥 내려가듯, 숨을 쉴 수가 있었다. 국물까지 비우고 나니 겨울 끄트머리였다. 동치미와 함께 고통의 터널을 살아서 걸어 나올 수 있었고, 내내 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떠올리며 위로받을 수 있었다.

소설 <국수>는 혀를 끊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픈 새엄마를 위해 국수를 만든다. 오래 전 새엄마가 양념도, 고명도, 간도 없이 해주던 국수를 뚝뚝 끊어먹던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만든 국수를 삼키지 못하는 새엄마를 위해 다시 국수를 뚝뚝 끊는다. 국수로 정이 오간 것이다.

우리는 자주 밥상을 잊는다. 내일을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하고 돈을 벌려 한다. 가족과 밥상을 마주하는 일은 늘 뒤로 밀린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가족은 해체되어 간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하고, 식탁에 둘러앉아 오래도록 천천히 음식을 먹고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고 들어주고, 마음을 나누는 일의 행복을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 어쩌면 가장 소중한 추억도 내일로 밀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