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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Tango)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1870년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선창가 보카(Boca) 하층민들이 고된 노동을 이겨내기 위해 추었던 춤에서 비롯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꿈을 찾아 남미로 건너온 이민자들이 힘든 노동을 마친 뒤 삶의 애환과 피로를 달래주던 음악이 바로 탱고였던 것이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유럽에 비해 문화적 자존감이 낮았기에 젊은 날의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는 탱고가 유럽의 고전음악보다 차원이 낮은 음악이라고 여겼다. 밤에는 탱고클럽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낮이면 스트라빈스키, 벨라 바르톡, 라벨 등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을 공부하며 틈틈이 곡을 썼다. 그렇게 밤낮으로 10년을 공부한 끝에 그에게 프랑스 유학길이 열렸다.

프랑스로 건너간 피아졸라는 최고의 음악교육자로서 '음악가의 음악가'로 불리던 나디아 블랑제(Nadia Boulanger)를 찾아갔다. 그는 블랑제 선생 앞에서 자신이 지난 10년간 갈고 다듬은 곡들을 조심스럽게 선보였다. 그러나 선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여기는 스트라빈스키, 여기는 바르톡, 여기는 라벨이 있을 뿐 어디에도 피아졸라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순간 피아졸라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졌다. 블랑제 선생은 피아졸라에게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음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는지 물었다. 피아졸라는 탱고는 수준 낮은 음악이라 여겨 부끄럽지만, 밤에는 클럽에서 탱고를 연주한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블랑제는 그에게 탱고를 연주해보라고 시켰다. 피아졸라의 탱고 연주가 끝나자 블랑제가 버럭 소리쳤다. "이 바보야! 이게 바로 피아졸라야." 훗날 회고록에서 그는 이 순간, 자신이 지난 10년 간 유럽 음악풍을 따라 작곡했던 모든 곡들을 내다버렸다고 고백했다. 다른 이를 부러워하며 그 뒤만 쫓다가는 영원히 2등으로 살 수밖에 없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에는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충실한 1등으로 살 수 있길 바란다. 이 세상에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으니 말이다.

/황해문화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