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문화·체육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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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람이세요? 학교는 어디 나오셨어요?"
취재를 다니다 보면 간혹 고향이나 출신학교를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과 공유할 수 있는 물리적 정서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때때로 자신과의 교집합을 확인해 '자기 편'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학연·지연의 카테고리를 끊지 못 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인천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사람마다 가치기준은 다르겠지만 인천에서 태어난 사람, 인천에서 낳지 않았지만 인천에 사는 사람, 인천에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 등등이 모두 인천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인천사람은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가 어디에서 태어났건, 어디서 살고 있건, 늘 인천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인천사람인 것이다.

지난해 기자가 종합계간지 <황해문화>에 연재했던 기사를 엮어 펴낸 <인천문화지리지>는 바로 그렇게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쓴 책이다. 송창식, 전무송, 권칠인, 김중미, 하종강 등 책에 등장한 12인의 주인공들은 인천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존재했다. 어린시절만 인천에서 잠깐 살다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성장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나는 인천사람이며, 언제나 고향을 잊지 않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들은 "고향에서 불러주면 언제라도 달려가 공익에 봉사할 준비가 돼 있다"는 생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다. 반면 어떤 유명 연예인은 인천사람이 틀림없음에도 '서울사람'이라 우기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렇다. 기자가 인천사람은 물리적 조건을 떠나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 '자신이 인천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란 확신을 굳힐 수 있던 것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중요한 결론이었다.

인천은 개방성, 다양성, 역동성의 도시다. 6·25전쟁 직후 이북의 피란민들이 대거 내려왔고, 산업화시대엔 충청, 호남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인천으로 왔다. 낳고 자란 토박이보다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 더 많은 도시가 인천이다. 그들은 '한강의 기적'을 일군 우리나라 산업화와, 6월항쟁을 견인한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며 인천의 성장에 힘을 보탰다. 인천이란 땅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치열한 생존본능은 '인천짠물'이란 말을 잉태시키기도 했다.

인천의 힘은 바로 이 '다양성'과 '다원성'에 있다.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한 데 어우러져 거대한 '컬래버레이션'(협업)을 통해 강력한 '역동성'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인천사람들은 특히 외지사람을 배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호남, 충청, 경기도 사람이 민선시장을 할 수 있는 것도 '바다는 강물을 물리치지 않는다'는 '해불양수'의 정서가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인천은 누구에게나 열린 도시이자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땅인 셈이다.

우리나라가 문물이 크게 융성한 12세기, 고려의 개경(개성) 벽란도엔 송나라, 거란족, 일본, 동남아는 물론이고 아라비아상인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사람들이 북적댔다. 고려가 '코리아'(KOREA)란 이름이 전세계에 알려진 때가 그 때였다는 건 적잖은 이들이 아는 사실이다. 연구를 해 봐야 알겠지만, 미국이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인종국가이기 때문이며, 중국이 21세기 '대국'으로 떠오르는 것도 56개 민족이 모여사는 나라란 사실과 틀림없이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전국의 도시들이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도 인천은 지난해 말 인구 300만 명을 넘어섰다. 인천의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1883년 개항 때부터 인천은 사람들이 떠나가는 도시가 아닌 '찾아오는 도시'로 성장해 왔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 사는 도시가 좋은 도시"라는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의 지론을 볼 때, 기자가 말하는 '인천을 사랑하는' 진정한 인천사람이 많을수록 인천은 점점 더 좋은 도시가 될 게 틀림없다. 사람도 공간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아끼고 가꾸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정유년 새해엔 인천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