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 장 남았다. 올 한 해 동안 일력(日曆)을 사용했다. 이 일력은 올 초 가끔 가는 신흥동 어느 중국집에서 얻은 것이다. 간짜장을 시켜 놓고 메뉴판 옆에 걸린 일력을 이리저리 들쳐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신기했다. "하나 얻어다 줄까요." 며칠 후 춘장 제조업체에서 만든 일력을 그 집 여주인에게 건네받았다.

달력이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연말연시가 되면 은행이나 거래처에 미리 부탁해서 겨우 얻었다. 철 지난 달력은 교과서를 싸는 데 요긴했다. 딱지 만드는 아이에 의해 몇 달치가 앞서 찢기기도 했다. 365일 하루 한 장씩 뜯어내는 일력은 얇아서 휴지로 쓰기 안성마춤이었다. 몇 번만 비비면 요즘의 티슈처럼 됐다. 어머니는 가위로 일정하게 잘라 변소에 걸어 놓으셨다.

일력은 확실히 월력보다 시간의 흐름을 강하게 깨우쳐 준다. "쫙∼" 귀로 듣고 눈으로 날짜를 보며 다시 하루가 시작됐음을 실감했다. 뜯을 때마다 365일 매일의 감정은 조금씩 달랐다.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날, 영원했으면 하는 날, 아예 없었으면 하는 날…. 사라졌던 일력이 최근에 추억의 감성에 힘입어 팬시상품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매일 마음에 새길 격언을 적어놓은 일력, 세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으로 365개의 여행지를 소개한 일력, 심지어 매일 한 장씩 뜯어내며 그 날의 실제 달 모양을 '감상' 할 수 있는 일력도 있다. 몇 년 전 독일의 태양광 패널 제작 회사는 20년 치 일력을 만들어 화제가 됐다. 7,300여 장을 뜯어내야 비로소 끝장이 보인다. 그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의 보증 기간이 20년임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었다.

새해 일력을 얻을 겸 달걀 후라이드 얹힌 옛날식 간짜장을 먹을 겸 다음 주 날 잡아서 그 중국집에 가야겠다. '간접광고'가 될까봐 상호를 말할 수는 없고 힌트를 적는다. 가게 문을 연 지 70년 된 이 집은 원래 호떡집으로 시작했다. 중국집으로 신장개업하면서 '신흥동에서 제일 맛 좋은 음식점이 되자'는 소망을 담고 간판을 내걸었다. '신흥동 제일'을 줄이면 그 집 상호다.


/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