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이 끝나간다. 2016년을 가만히 돌이켜보며 올해 얼마나 제대로 살았는지 반추하기 좋은 날들 만이 며칠 남았다. 이맘 때면 나는 이런 것을 떠올린다. 올해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교집합을 얼마만큼 만들었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이상'과 '현실'로 치환되며 종종 대립한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얼마나 극복했는지를 묻는 일이 된다. 이때 '극복'은 '적당한 타협'을 의미하고 이 타협은 종종 '현실'의 편을 들어준다. 결국 둘 사이의 줄다리기는 '현실'을 위해 얼마나 수용 가능한 만큼의 '이상'을 포기했는가, 그런 질문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보면 애초에 '하고 싶은 일'이 왜 있어야 하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이상이 그렇게까지 현실적인 문제와 대치되는 것이고 결국 현실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이 삶이라면, 차라리 '하고 싶은 것'쯤 없으면 더 편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이 의문에 적당한 이유를 댈 수 없을지라도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리라 믿는다.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건 가난한 일이다. 하다못해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조차 '하고 싶은 일'이다. 물론 이만큼의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시간은 간다. 다만 '별 수 없이' 간다. '시간이 아깝다'는 말은 돈을 못 벌거나 놀고 있을 때가 아니라 차라리 이런 때에 어울린다. 게다가 속수무책 시간만 간다고 느낄 때 사람은 위태로워지는 걸 우리는 안다.

일생을 사는 일이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며 그 안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놓여 있다면, '이상'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줘도 괜찮은 게 아닐까. 어차피 시간은 간다. 뭔가에 욕심을 내야 한다면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생각하고 그걸 해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줘도 좋을 것이다.
이제 '올해는 이상을 생각하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날이 얼마만큼 있었나'를 묻기로 하자. 우리의 가난하지 않은 날들을 위해. #연말 #2016 #가난하지않은시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