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만에 최초 방문한 日총리 평화·화해 강조…전쟁사죄 언급도 안해
오바마·아베, 美 하와이 진주만 추모 기념관서 첫 공동 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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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아베 신조 (安倍晋三) 총리가 일본 정상으로서 75년만에 제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공습지인 진주만을 찾아 전쟁사죄와 반성을 담지 않은 채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27일(현지시간) 강조했다.

이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은 두 나라와 양국 국민 간에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면서 "전쟁의 상처가 우애로 바뀔 수 있고, 과거의 적이 동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평화와 화해의 의미를 강조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일 관계는 세계 평화의 주춧돌이며 두 나라의 동맹은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선언했다.
 
양국 정상은 이런 내용의 '진주만 메시지'를 날렸으나, 아베 총리가 전쟁 사죄는 커녕 반성조차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아시아 내 피해국가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호놀룰루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이날 오전 진주만에 있는 애리조나기념관을 방문해 공동 헌화하는 형식으로 미일 정상의 진주만 공동 방문이라는 역사적인 행보를 개시했다.
 
애리조나기념관은 75년 전인 1941년 12월 7일 구(舊)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침몰한 미군 함정 애리조나 함 위에 세워진 당시 희생자 추도 시설로 아베 총리는 역대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했다.

역사적인 방문이었지만 아베 총리는 예상대로 전쟁사죄는 물론 반성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대신 '희망의 동맹'이라는 미·일 관계, 과거 적이었던 미·일 간의 '화해의 힘'을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부전의 맹세, 즉 다시는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사는 밝혔으나 일본의 2차대전 책임이나 이에 대한 사죄, 반성을 전혀 거론하지 않아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시간 오전 10시 45분(한국시간 28일 오전 5시 45분)께 진주만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미국 비밀경호국(SS)의 호위를 받으며 보트를 타고 애리조나기념관으로 이동했다.

양국 정상은 진주만 공습으로 숨진 이들의 이름이 적힌 위문 벽 앞에 다가가 헌화하고 나란히 묵념했다.

양국 정상이 헌화한 꽃 주변 리본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미합중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추모하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라는 문구가 새겨졌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일본군의 기습적인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인 2천403명이 사망했다. 이 중 1천 명의 미군이 침몰한 애리조나 함에서 수장됐다.

미국은 이 공습을 계기로 2차 세계대전에 가세해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다.

아베 총리는 진주만-히캄 합동기지로 옮겨 발표한 성명에서 전쟁 참화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강조하면서 "일본이 2차 대전 후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를 만들고 법의 지배를 존중하며 부전(不戰)의 맹세를 견지했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에서 싸우던 미국과 일본이 이제 '희망의 동맹'이 됐다"면서 "세계인에게 진주만이 화해의 상징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진주만 공습 희생자에게 '애도의 정성'을 바친다면서 과거 적대 관계를 넘어 관용의 힘을 보인 미국민에게 감사의 뜻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드물면서도 깊고 강하게 맺어진 동맹국"이라며 "양국 어린이와 후세, 세계인들에게 진주만이 화해의 상징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AP 통신은 아베 총리가 사과를 표명하지 않았지만, 진주만 공습 희생자에게 "용감한 남성과 여성"이라고 경의를 표했다고 소개했다. 아베 총리는 희생자들에게 "진실하고 영원한 애도"를 드린다고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역사적인 행보가 화해의 힘을 말해준다"며 '우애의 정신'으로 아베 총리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면서 제2차 대전 당시 적이었던 미일 양국이 전쟁의 상처를 우애로 바꿔 동맹으로 발전시켰고, 그 어느때보다 굳건한 미일동맹이 세계 평화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은 지난 5월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 방문의 답방 성격이 짙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를 찾아 원폭에 희생된 이들을 애도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때 원폭 투하 책임에 대해 사과를 하진 않았다.

아베 총리는 미·일 양국 간의 화해와 희망의 동맹 메시지를 전파하고자 전날 일본 도쿄를 떠나 진주만에 도착했다.

방문 첫날 아베 총리는 미군 1만3천 명 이상의 태평양전쟁 전사자들이 잠든 미국 국립태평양기념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지난 1950년대 전직 일본 총리 세 명이 진주만을 찾긴 했으나 1962년 세워진 애리조나기념관을 방문한 건 아베 총리가 처음이다.

내년 1월 퇴임하는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공동 헌화에 앞서 이날 오전 미국 태평양사령부 본부가 있는 하와이 주 호놀룰루의 H.M 스미스 캠프에서 마지막 정상회담을 했다.

현재 고향 하와이 주에서 휴가 중인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의 공식 일정이 끝난 뒤 하나우마 베이 주립공원에서 가족, 지인과 함께 스노클링을 즐기며 다시 휴가 모드로 들어갔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