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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70년사를 사진으로 정리할 기회가 있어 살펴보니 우리가 정말 짧은 시간 동안 놀랄 만한 발전을 이뤘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됐다.

GDP(국내총생산) 규모로 볼 때 대한민국은 2015년 기준 세계 11위다. 한국전쟁 당시 UN군으로 참전했던 호주, 네덜란드, 터키, 뉴질랜드 같은 나라보다 앞선 순위다. 그러나 지난 2016년 한 해를 되돌아보면 마냥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그리고 최근의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그간 우리 사회를 이끈 정치인, 재벌 총수, 최고위직 관료, 대학총장, 교수 같은 엘리트들의 상식과 양심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들은 하나 같이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로 일관했다. 이제 와서 우리사회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논하는 것조차 참 의미 없다고 여겨질 만큼 총체적인 부패공화국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이 어찌 그들만의 책임이랴 싶다. 광복 이후 70여년, 친일파가 권력을 잡아 독립운동가와 애국자를 겁박하고, 쿠데타로 집권한 이들을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했고, 숨겨둔 부를 환수하지도 못했다. 목회자들은 교단에서 부패한 권력을 옹호하고, 재벌들은 대를 이어 관료와 언론을 돈으로 길들였다. 이와 같은 사태의 원인을 구조나 제도에서 찾아내려 애쓰다가도 결국 다른 한 축을 이루는 것은 깨어있는 시민의 양심과 참여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에서 문둥병을 앓고 있던 예루살렘왕국의 보두앵 4세는 기사 발리안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쟁에서 대승한 16살 땐 백 살까지라도 살 것 같았네. 하지만 이젠 서른도 자신 없어. 어떻게 죽을지는 아무도 선택할 수 없네. 체스의 말은 킹에게 복종하고 아들은 아비를 따르지. 허나 명심하게 비록 몸은 권력에 복종하더라도 영혼은 항상 자신의 것임을…. 하느님 앞에 서면 변명은 없어. 누가 시켜서 했다 혹은 당시엔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건 통하지 않으니 명심하게." 2016년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의 영혼은 스스로에게 당당했는지 물어보자.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