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물포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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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가족공동체가 사소한 갈등이나 어이없는 이유로 한순간 무너지는 일들이 잦다. 추운 겨울 난방도 안 되는 방에 방치된 노인들 이야기, 'PC방 용돈 안 준다'고 10대가 아버지를 숨지게 한 사건, 늙고 병든 부모를 상대로 한 40~60대 중장년의 반인륜적 범죄 등이 뉴스에 오르내린지 오래됐다. 지난 10년 동안 패륜범죄 건수는 9만4000여건에 이르며, 발생추이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때마다 '효'의 중요성을 만병통치약처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진단과 처방은 한결같다. 전통적인 사회에서의 가족관계가 붕괴됐다며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가족 내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며 사회 윤리의식을 제고시켜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런데, 전통사회를 지지해 준 '효의 좋은 뜻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효와 가족 개념, 인간생명 존중의 사상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노인은 사회적 걸림돌인가. 아니면 노인의 지혜와 경험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자산인가. '집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려라'는 고대 그리스 격언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유효한 말일까. 현대사회에서 전자화폐와 카카오 택시, 알파고, 포켓몬 고, 1인 방송 등이 일상생활에 깊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사회의 특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카카오 택시는 스마트 폰에서 메시지를 주고 받고 택시를 움직인다. 알파고는 바둑에서 1조가 넘는 경우의 수를 익힌 디지털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줬다. 포켓몬 고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더 밀접하게 결합한 모바일 게임이다. 이들은 현실과 가상,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계가 연동되면서 더욱 확장되고 있다.

그럼 현대사회에서 '효'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효'는 지배와 복종의 수직적 관계의 틀 속에서 가족관계와 사회를 유지·존속시키는 기본 규범이었다. 그러기에 요즘 젊은이들은 효는 구시대적 유물이고, 나이든 어른은 자신의 경험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꼰대' 정도로 생각한다. 심지어 일부 아이들은 스마트 폰에 부모 전화번호의 이름을 '괴물'이나 '받지마'라고 저장해 둔다고 한다. 그래서 전통사회의 효 개념을 현대사회에 맞게 재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얼마전 경기문화재단이 주관한 '한국의 효·가족문화의 전망'이라는 경기유교포럼이 열렸다. 현대사회에서의 효문화 콘텐츠 활용방안으로는 노년층이 디지로그한 디지털 문화에 접근할 수 있도록 사회가 지지해 주고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효의 현대적 개념도 하모니(H)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Y)와 노년세대(O)의 조화적 노력을 의미한다고 재해석했다. 효는 원래 일방향성이 아니라 쌍방향성의 윤리이자 사랑이라는 것이다. 현대에 맞게 효의 의미와 개념을 명료화할 것과 정신적 효와 물질적 효의 조화를 추구할 것, 포스트 모던 시대에 걸맞은 인성교육,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효 교육 및 방법 개발을 제안했다.

사람은 나이가 듦에 따라 흰머리, 주름살, 생식능력의 감소, 면역체계능력과 심장기능의 감소 등과 같은 신체적인 변화를 겪는다. 그래서 고대부터 인간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비밀을 찾아 나섰고, 긴 수명을 정의로운 사람에게 주어진 신의 축복으로 여겼다. "아담은 930세까지 살다 죽었다"는 성경구절에서 보듯이 최초의 인간과 더불어 장수와 죽음이라는 사건이 등장한다. 장수가 신의 축복이면서도, 장수에 따른 노쇠는 인간을 괴롭히는 불행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사회는 2000년 65세 인구가 7%를 넘어선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머지않아 이 비율이 14%를 넘어설 것이라 한다. 지금처럼 기대수명은 늘어나고 저출산 고령화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사람들은 건강문제 등 갖가지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어쩌면, 4차산업 혁명은 고령사회를 맞아 로봇이 부모를 부양하는 시대를 가져 올지도 모른다. 그 때도 부모와 자식이 공경과 자애의 마음을 주고 받으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몇년 전 유니세프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노인공경도가 17%로 아·태지역 17개 국 청소년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효와 유교의 나라라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결과다.

하지만 효문화는 우리가 쉽게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유산이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효문화를 상호 소통하는 수평적 문화로 재해석한다면, 효문화가 가정을,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이동화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