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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한 개가 목줄도 없이 나타난다면 웬만해선 겁먹지 않기 힘들 것이다. 장소가 러시아고 게다가 바로 옆에 구소련 첩보국 국가보안위(KGB) 출신인 '마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면 특히 더 그렇다.

푸틴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15~16일)을 앞두고 일본 언론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사람 몸집만 한 개를 데리고 나왔던 것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15일 CNN,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집무실인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니혼TV,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를 갖는 자리에서 일본 정부로부터 선물받은 아키타견(犬) '유메(꿈)'를 데리고 나왔다.

유메는 푸틴 대통령이 인터뷰 장소에 들어올 때 조용히 뒤따라오다가 카메라 기자를 보고 큰 소리로 짖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유메에게 몇 차례 재주를 부리게 했고 이후 인터뷰가 시작됐다.
 
난폭해 보이는 개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인터뷰에 참여한 일본 기자들은 놀란 표정이었다. 미국 CNN 방송은 러시아 정부가 공개한 당시의 영상을 보고 "기자들이 얼굴을 찡그렸고 카메라 기자는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고 표현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돌출 행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2007년 인터뷰할 때도 검정색 개 코니를 데리고 나타나 메르켈 총리가 불편한 표정을 짓게 했다.

유메는 동일본대지진에서 러시아의 구호활동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일본이 선물한 개다. 개를 데리고 인터뷰장에 나타난 것은 일본에 대한 우호의 표시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인터뷰를 앞두고 일본에 대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많다.

푸틴 대통령은 개를 데리고 인터뷰에 나타날 정도로 애견(愛犬)가이면서도 또 다른 아키타견을 방일 선물로 주겠다는 일본 측의 제안을 거절해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날 인터뷰에 참여한 기자 중 한 명은 "유메를 봐서 기쁘지만 약간 놀랐고 만남의 시작이 이런 식이어서 두려웠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유메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유메는 허튼짓을 하지 않는 개로, 경비견이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방일에 앞서 일본에 유독 차가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러시아에는 영토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 회담을 통해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 문제의 진전을 기대한 일본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 13일에는 러시아 정부 고위관계자가 일본 언론에 영토문제가 "즉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1956년 당시 일본이 옛 소련에 대한 제재에 가담하고 있었다면 소·일 공동선언이 가능했을지 생각해 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자국에 대해 경제제재를 하고 있으면서 영토 반환이라는 소득을 기대한다고 비꼰 것이다.

이날 푸틴 대통령이 예상보다 늦게 일본에 도착하며 '지각'을 한 것도 마찬가지로 기선제압을 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예상보다 2시간 늦은 이 날 오후 5시에 야마구치에 도착해 일본 측 관계자들을 기다리게 했다.

이에 반해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을 위해 야마구치행 비행기에 오르며 '개인적인 유대관계 형성'을 강조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일본 측은 이날 정상회담 후 푸틴 대통령과 함께 갈 온천여관을 예약해 놓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