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섭 경제부장
남창섭_2.jpg
현재 미국에서는 만화와 영화, 운동선수의 캐릭터를 인형으로 만든 보블헤드(Bobblehead)가 유행이다. 대략 3등신의 비율로 만들어진 큰머리가 흔들거리는 인형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책상 위와 자동차 운전석 앞에 흔하게 볼 수 있다.

세계적인 IT기업인 구글이 회의 때 가장 경계하는 사람이 바로 보블헤드 인형처럼 머리만 흔들거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큰 활약을 펼친 미국의 조지패튼 장군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다면 누군가는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에서도 회의시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모두의 동의'다. 최선의 방향을 결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모든 선택의 방향을 놓고서 공개적으로 깎아내는 과정, 즉 갈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갈등이 존재하려면 반드시 반대 의견이 있어야 하며, 다양한 의견들을 놓고 논쟁하는 개방적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구글은 보블헤드 인형 같은 사람을 회의에서 빼버리라고 충고한다.
역사상 최고의 임금으로 꼽히는 세종대왕도 찬반 토론을 좋아했다. 그의 회의방식은 문제를 던져 놓고, 찬반 토론을 거듭하게 하는 것이다. 찬반 의견이 다양하게 제기되면 대책을 물어본다. 회의 시간은 길어졌지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 거의 다 드러나곤 했다. 일을 맡은 재상들은 그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는지, 앞으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지를 얘기했다.

최종적으로 토론 내용을 정리한 후 세종대왕은 짧게 말한다. "누구의 말대로 하라." 찬반토론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내용을 종합해 좋은 의견에는 힘을 실어주는 회의 방식이다.
최근 한국사회는 대변혁기를 맞았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전 국민이 분노하고 수치스러워 하며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한달넘게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비선실세가 국정을 좌지우지 하는 사태가 아무도 모르게 일어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는 '아니요' 하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었을까.

인천에서도 친박실세들이 여럿 있다. 힘 있는 시장론을 들고 혜성처럼 나타나 인천시장에 당선된 유정복 시장을 시작으로, 대통령을 '누나'라 불렀다 '화'를 입었다는 우스갯소리로 유명한 윤상현 의원, 총선기간에 대통령이 여러차례 지역구를 방문했다는 이학재 의원, 대통령의 입을 자처하며 청와대 대변인을 거친 민경욱 의원 등이 그들이다. 이 중에 그동안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해 '아니요'를 외쳤던 이가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정권의 일방통행에 '아니요'라며 반기를 들었다고 고초를 겪는 인천의 한 전문가가 있다. 국내 최대 잠수업체인 알파잠수의 이종인 대표가 대표적이다. 최근 알려진 청와대 김영한 전 정무수석의 수첩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김영한 비망록'에는 세월호 참사 때 다이빙벨을 이용한 구조작업을 벌이던 이 대표가 정권의 눈엣가시가 되어 항시 사찰과 각종 불이익을 받았던 정황이 들어있다. 이미 천안함 사건 때 북 어뢰피격이 아닌 좌초 가능성을 주장했다고 정권의 미움을 샀던 그가 또 다시 큰 시련을 겪은 것이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그를 '빨갱이'라며 비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이종인 대표는 오히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조선공학 전공의 잠수부며 국내 최고 기술을 보유한 암파잠수를 이끌고 있는 기업인이다. 그에게 처음 전화를 걸었던 날, 전화기 너머 컬러링에서 해병대 군가가 흘러나오던 때를 기억한다.

바다와 해병대를 사랑하는 이 대표는 한국사회의 오른쪽에 있는 보수주의자가 더 맞을 것 같다. 그런 그가 자신의 전문지식을 가지고 정권의 일방통행에 '아니요'를 외쳤다가 각종 불이익을 당한 것이다.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사람'을 가리켜 부역자라 한다. 이런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사회는 정상적일 수 없다. 나라를 잃은 일제시대와 6·25전쟁 때가 그렇다. 수십년간의 독재정권도 마찬가지다. 이런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매우 위험한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친일부역자와 독재정권부역자 등에서 주로 사용되던 단어가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맞아 또 다시 사용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단어까지 다시 등장할 정도로 시민들의 분노는 사뭇 엄중하다. 박근혜 정권에 대해 '아니요'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할 것이다. 진짜 부역자가 되기 싫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