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크리켓협회는 '인천' 유일 … 외국인 투표권도 요구"
"체육회 "크리켓협회장 선거 무효 … 조만간 다시 치른다"
대한크리켓협회장 선거가 다시 치러질 전망이다. 최근 진행됐던 선거가 '규정을 위반한 상태에서 치러졌다'는 대한체육회의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24일 대한크리켓협회에 공문을 보내 지난 9월9일 치른 회장 선거 결과는 무효라고 밝혔다.

당시 선거에서 당선한 전 대한크리켓협회 회장 A씨가 재선 출마를 하고자 물러난 뒤 선거관리위원회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규정 위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체육회는 조만간 직접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 선거를 다시 치르기로 했다.

대한크리켓협회도 28일 이같은 대한체육회의 지침을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다시 치러지는 선거에서는 아직 낯선 크리켓이라는 종목의 특성상 우리나라에서 선수 및 지도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외국인의 선거인단 포함 여부 및 유일한 인천크리켓협회의 선거인단 추천권 행사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규정 어긴 선관위 구성
규정상 선거 전 현직 회장이 재선 출마를 하고자 회장직에서 물러나면 협회는 이사회를 열어 권한대행을 선출하고 거기서 뽑힌 권한대행이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이 회장에서 물러나기 전 직무대행자로 B씨를 지명했고, 직무대행자 B씨가 선관위를 구성해 선거를 치렀다.

여기에다 B씨는 A씨가 회장일 때 부회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따라서 당시부터 'A씨 측근으로 볼 수 있는 B씨는 A씨에게 유리한 선거관리를 할 것'이라는 이유로 공정성을 의심받아 선거 과정에서 인천크리켓협회 출신인 상대 후보측으로부터 항의를 받았었다.

그러나 선거는 강행됐고, A씨가 당선했지만 상대후보측은 당시 "협회가 선거를 직접 진행하려면 외부 인사를 중심으로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했어야 함에도 전 회장 A씨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돼 불공정한 선거가 치러졌다"며 이의제기와 함께 대한체육회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한체육회가 2달 이상 사실 관계 확인을 거쳐 선거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직접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 선거를 다시 치르겠다는 방침을 최근 정한 뒤 이를 대한크리켓협회에 통보한 것이다.

▲인천크리켓협회의 추천권
따라서 다시 치러지는 선거에서는 선거인단이 어떻게 구성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인천크리켓협회의 선거인단 추천권'과 '외국인의 투표권 허용' 여부다.
원래 중앙경기단체 회장 선거를 하려면 전국 17개 시·도협회에서 임원, 선수, 지도자, 심판, 동호인 등을 추천해 100명 이상의 선거인단을 구성해야 한다.
그런데 대한크리켓협회의 경우 전국에 인천크리켓협회 하나밖에 없다.
크리켓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에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유일하게 인천에서만 협회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인천크리켓협회는 국가대표팀 훈련과 동호인 대회 등을 실질적으로 개최·운영하면서 그동안 한국 크리켓의 중심으로 활약해 왔다.
국내 유일의 크리켓전용경기장도 인천에 있다. 여기서 주중에는 국가대표팀이 훈련하고, 주말에는 동호회 크리켓 대회가 열린다.
이와 관련 낙선 후보측은 "이런 상황임에도 B씨는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인천크리켓협회에 선거 규정에 명시된 선거인단 추천권을 주지 않고, 대한크리켓협회에서 임의로 추천한 선거인만으로 선거인단을 구성했기 때문에 선거가 공정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투표권 다시 허용?
아울러 외국인의 투표 허용 여부다. 크리켓은 종목 특성상 다수가 외국인이고, 국내 선수들보다 실력도 월등하다.

주말리그에 참가하는 15개 동호인팀 중 14개팀이 외국인 위주의 팀이다. 간혹 귀화한 외국인도 있지만 극히 일부다.

그런데 지난 9월 선거에서는 이렇게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9월9일 선거 전, 애초 7월17일에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었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무산됐다. 그 당시에는 외국인에게 투표권이 있었다.

그런데 B씨가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한 뒤 치른 9월9일 선거에서는 외국인의 투표권을 박탈했다.
그리고 15개 동호인팀 중 14개 팀에 속한 수많은 선수 중 겨우 귀화인 12명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다. 반면 1개뿐인 한국인팀에서는 18명이나 투표권을 가졌다.

그나마 이들 모두는 회장 후보로 출마한 A씨(대학교수 출신)의 제자들이었다.

현재 대한크리켓협회 회장 선거관리 규정에는 '외국인 투표권'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없다. 다만, '투표권은 19세 이상이고, 임원은 인준을 받은 경우, 선수나 지도자는 대한체육회 시스템에 등록된 경우'로 되어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선출 공무원을 뽑는 것이 아니고 체육단체 회장을 뽑는 선거의 경우 국적에 관계없이 외국인도 규정에 따라 선수로 등록된 회원이고, 대회 참가 등의 활동을 했다면 당연히 투표를 할 수 있다"는 법조계의 판단도 존재한다.

실제, 대한체육회의 지도자·선수·체육동호인등록 규정 제4조와 14조는 '해당 종목 협회에서 인정하면 (외국인도)선수나 지도자로 등록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인천크리켓협회는 "대한크리켓협회가 이들 외국인을 대한체육회 시스템에 선수로 등록했고, 이들이 그동안 꾸준하게 대회에 참가해 온 만큼 당연히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외국인 선수는 "선거인단 구성이 공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크리켓협회 리그에서 탈퇴하겠다는 팀이 상당수다. 우리에게 투표권이 주어질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번에도 배제되면 크리켓 국제기구인 ICC에 제보하고, 실력행사도 하겠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조만간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외국인 선수 투표 자격 문제 등 자체적으로 해석을 명확히 내리지 못하는 사안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질의를 하는 등 꼼꼼하게 원칙대로 선거를 다시 치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종만 기자 male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