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 작가· <13억 인과의 대화> 저자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신비한 동물 용(龍)은 중국을 상징한다. 중화민족, 즉 한족을 대표하는 으뜸 동물이다. 갑골문(甲骨文)에 등장하는 용은 '하늘'과 '뱀'의 결합 형태다. 하늘을 날아다닐 정도로 패기에 넘치는 뱀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이 아마도 한족의 옛 조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뱀 토템 부족은 주위의 여러 부족을 굴복시킨 후 연맹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용생구자(龍生九子), 용에게는 아들이 아홉이 있다. 명나라 학자 서응추(徐應秋)가 지은 '옥지당담회'에 출몰한다. 지금도 재미난 상징물로 용과 더불어 활개를 치고 있다. 외국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건물이나 거리 곳곳에 숨어 있다. 아버지의 아들 토템은 그 옛날 연맹에 복속된 부족이었을 것이다.

뿔 달린 용으로 음악을 좋아해 현악기 머리에 달린 수우(囚牛)가 장남이다. '애제'는 표범 몸과 용 머리의 흉악한 모양으로 살인과 싸움을 좋아하고 칼자루나 병기에 출현한다. '조풍'은 모험을 좋아하고 요괴를 물리치거나 화재를 제거하는 맹수로 전각 앞을 지킨다. 포뢰(蒲牢)는 바다사자로 고래에 맞서 거대한 고함을 지르는데 대형 종의 손잡이에 새겨져 있다. '산예'는 꿇어앉은 사자 모양으로 연기를 삼켜 내뿜기를 좋아해 향로 다리에 출현한다. 다른 동물보다 쉽게 관찰이 되는 거북이 '비희'는 장수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비석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천하장사다. '폐한'은 호랑이 형상으로 시시비비 가리기를 좋아해 감옥이나 관청 문에 달려있다. '부희'는 용처럼 생겼는데 고상하게도 문화를 좋아해 석비 꼭대기를 휘감고 있다. '리문'은 용 머리와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화재방지에 일가견이 있어 목조 건물의 지붕 끝에 자리하고 있다.

아들을 거느린 용은 황제로 등극한다. 진시황을 '조룡'이라 부르는 이유는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를 이룬 '황제'에 대한 극찬이다. 하급관리이던 '유방'이 한나라를 개국한 후 태몽으로 용을 등장시킨 까닭도 하늘의 뜻을 받들었다는 구차한 변명이었다.

두 마리 용이 구슬을 가지고 논다는 '이룡희주'는 황제가 거주하거나 행차한 곳의 건축물에 자주 등장한다. 황제가 거주하는 고궁에는 '구룡벽'을 세워 위엄을 보이기도 한다.

1988년 '한단'의 한 마을에서 돌로 조각된 용 열 마리가 한꺼번에 발견됐다. 길이가 368m에 이르는 거대한 용과 작은 용 아홉 개였는데 마치 용과 아홉 명의 아들과 짝을 이룬 듯하다. '천하제일용'이라 부른다. 차라리 '용 한 가족'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상상의 동물로 알려진 용의 고향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원지방 허난(河南) 성 북부 '푸양'이다. 1987년 약 7000년 전 신석기 고분을 발굴과정에서 '방각룡'이 출토됐다. 민물조개 껍데기를 이용해 마치 용처럼 빚었다. 그래서 '용향'이 됐다. 중화민족의 자랑, '중화제일용'이라고도 명명했다.

중원지방에서 용이 빈번하게 돌출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1971년에 '홍산문화'로 유명한 네이멍구 츠펑(赤峰)에서 기원전 4500여년 전 유물인 옥결(귀걸이)이 출토된다. 학자들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중원의 고도에서 직선거리로 1300㎞나 떨어진 동북 변방에서 나온 보물이 돼지의 머리, 말의 갈기, 뱀의 몸을 닮았기 때문이다. 갑골문의 용과 아주 비슷하다는 추리력을 발휘해 '벽옥용'이라 이름을 붙인다. 츠펑에 가면 C자 형의 옥결을 이정표로 한 '중화제일용'이 곳곳에 즐비하다.

'중화제일용'은 또 있다. 산시(山西) 지현의 물고기 꼬리가 달린 용 문양의 암화, '랴오닝' '차하이' 유적지에서 발견된 거대한 용 모습의 돌무더기도 모두 하나의 이름으로 부른다.

1996년에는 중원에서 서남쪽 800㎞ 떨어진 소수민족 동네 '구이저우' '안순'에서도 용의 뿔 화석이 발견됐다. '제일용'이 너무 많으면 곤란했던지 '신중국용'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였다.

용으로 추정되는 화석이나 유물은 전국 방방곡곡에 수도 없이 많고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국경선 바깥에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돼 용 문양과 조금이라도 비슷하면 '중국의 용'이라고 주장하기에 십상이다.
중국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 용이 승천하듯 중국이 G2에서 세계 최고의 지위를 향하고 있다. 두 마리 용을 가지고 구슬치기 하듯 노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그런데 '중화민족'의 발원이 '중화제일용'이 출토된 지역 모두라고 우기는 것은 굉장히 거북하다. 요하문명의 핵심지역으로 알려진 츠펑에 용을 토템으로 섬기는 부족이 살았다는 식으로 확정하면 곤란하다. 중원을 넘어 동북부터 서남, 아니 지금의 중국영토 전부를 다 아우르고 싶어하는 욕구는 고고학이나 역사학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어서 분통이 터진다. '왜곡'이기 때문이다. '용용 죽겠지?'하고 놀리는데 대책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자'는 '진실'이라는 수레바퀴에 매몰될 것이라는 심정으로 '보도미로'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