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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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최초의 국립문화시설인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설립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사업타당성이 있다"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고 최근 밝혔다. 계획대로라면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내년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작품을 공모·선정 뒤, 2018년 설계·착공에 들어가 2020년~2021년 개관한다.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센트럴공원(송도동 24의 8)에 들어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인천 최초의 국립문화시설이란 점에서 인천시민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 우리나라 차원에서도 우리의 활자, 인쇄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중요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인천유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1234)-팔만대장경(1251)-정족사고(1628)-외규장각(1782)-훈맹정음(1926)'이란 활자·인쇄 문화를 관통하는 인천의 유구한 역사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박물관 유치를 위해 전국 9개 시도가 뛰어들었지만 결국 인천이 선정된 것은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지역학자의 혜안, 인천시의 열정과 노력이 결합했기에 가능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그렇다면 어떤 시설이 돼야 할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박물관 개념과는 다른 콘셉트를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까지 박물관이라 하면 과거의 유물들을 갖다 놓고 설명을 붙여 놓거나 영상, 모형 등으로 주요 '볼거리'에 집중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전시·교육 기능은 박물관의 가장 기초적인 목적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매니아가 전문가를 앞지르는 시대엔 뭔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우선 우리나라 문자인 '한글의 세계화', '인터넷 강국'의 위상을 강화하는 메카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 매우 과학적인데다가 배우고 쓰기가 쉬운 글자로 알려졌다.

한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익힌다면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영어와 중국어의 사용이 이들 강대국의 힘과 직결돼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위해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한글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할 필요가 있다. 게임도 좋고, 테스트도 좋다. 외국인들이나 아이들이 한국말을 효과적으로 배우고,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한글의 확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의식을 결정할 뿐더러 일종의 문화이기도 하다. 한국어가 확산되면 언어는 물론 우리의 역사와 고유한 문화가 전파될 것이다.

제1의 정보혁명이 금속활자의 발명이었다면 제2의 정보혁명은 인터넷이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우리나라의 인터넷 전략에 대해서도 연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때는 서양 구텐베르크(1450년대)보다 무려 200여년 앞선 1200년대였다. 그러나 이를 확산시키는 '전략의 부재'로 서양의 문명은 급속히 발전한 반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그러지 못 했다. 서양은 인쇄술을 바탕으로 활자의 대중화에 성공 '집단지성'을 일궈냈다.

종교혁명, 르네상스, 프랑스 시민혁명 등이 모두 인쇄술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우리의 인쇄술은 대중화에 실패하면서 서양에 문명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사이버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SNS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싸이월드는 1999년에 시작했지만 2003년에 시작한 미국의 페이스북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이는 '전략의 부재'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인터넷강국의 반열에 올라 있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과 전략으로 가상공간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역량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인터넷을 주요 사업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비즈니스 마인드를 적용해 한국어 교육 등 활자·인쇄 문화, 여가, 레저와 연관한 여러 사업을 접목한다면 '두뇌가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피어날 것이다.

이를 위해 인천시는 시의 입장을 중앙정부에 적극 개진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만 맡긴다면 인천의 역사나 정서, 전략이나 철학에 맞지 않는 '또하나의 박물관'이 탄생할 수도 있다.

국책사업이라고 하지만 시는 이미 부지를 제공하는 등 상당한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사업이 시작되는 내년부터 인천시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