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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제대로 된 시험대에 올랐다.

'최순실 게이트' 파문으로 내부적으로 정책 동력이 상실된 가운데 '희대의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대외발 불확실성 또한 가중되는 모습이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은 국내 금융시장으로, 다시 실물경제로 전이될 수 있어 가뜩이나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경제의 침체가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그러나 '어려움은 있어도 위기는 없다'고 자신하는 모습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의 뼈아픈 교훈을 토대로 우리 경제의 대외건전성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화됐다는 설명이다.
 
시장에서도 우리 경제의 달라진 기초체력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국제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적절한 대응에 나설 경우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정부 "외환보유액·외채 등 대외건전성 지표 문제없다"

15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트럼프 당선 이후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의 확산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각종 지표를 고려했을 때 우리 경제는 다른 신흥국보다 탄탄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전날 "현재 우리 경제는 안정적 외채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순대외자산은 최대 수준이며 경상수지도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하는 등 여타 취약 신흥국과는 분명히 차별화된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대외건전성 관련 지표들을 살펴보면 과거 위기 때와 달리 안정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10월 말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천751억7천만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말 89억달러와 비교하면 무려 42배로 늘어난 수치다.

외환보유액을 9월(3천777억7천만달러) 기준으로 비교하면 한국은 세계 7위다.

단기적 대외지급 능력을 나타내는 단기외채 비율(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은 1997년 말 286.3%까지 올랐지만, 이후 점차 하락해 올해 6월 말에는 10분의 1 수준인 28.9%까지 낮아졌다.

이는 당장에라도 단기외채를 모두 갚을 수 있을 만큼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쌓아뒀다는 의미다.

외국에서 받을 채권과 갚아야 할 채무의 차이를 나타낸 순대외채권 규모는 6월 말 현재 3천578억달러로 역시 사상 최대치를 나타냈다.

1997년에는 순대외채무가 637억달러로 한국이 해외에 가진 자산을 모두 팔아도 빚을 못갚는 상태였던 것에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을 거둔 셈이다.

상품과 서비스 등을 포함한 경상수지는 1997년 102억9천만달러 적자였지만 이후 흑자로 전환해 작년(1천58억7천만달러)에는 1천억달러를 처음 돌파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독일과 일본에 이어 3위였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이런 점들을 고려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 8월 한국의 등급을 사상 최고인 'AA'로 상향조정하며 전망은 '안정적'(stable)으로 제시했다. 무디스 역시 S&P의 AA에 해당하는 'Aa2'(안정적)를 유지하고 있다.

피치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AA-' 등급을 부여했다.

◇ 높은 외국인 투자자금 비중·신흥국 의존도는 '취약 고리'

한국 경제 외환 부문의 기초체력은 튼튼한 편이지만 완전히 안심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추가 변수에 따라 외국인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위험성도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외국인 투자자가 보유한 상장주식(469조4천억원)은 전체 시가총액 대비 31.1%다. 일본이 대략 10%, 미국이 20% 정도인 점과 대비하면 의존도가 훨씬 큰 셈이다.

외국인 투자자는 5개월째 주식 순매수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순매수 규모는 8월 1조8천510억원, 9월 1조6천250억원, 10월 4천610억원으로 점점 줄어드는 형국이어서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다.

트럼프 당선인이 당선 수락 연설을 통해 화합을 강조하고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시장 불안이 다소 가라앉은 상태지만 실제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돌발 행동을 보이면 불안감이 확산, 순매수세가 줄어들거나 순유출로 반전될 가능성도 있다.

국내 금융시장이 직격탄을 맞지 않더라도 신흥국을 통해 리스크가 전염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다 최근에는 국내 저성장·저금리가 장기화하며 각 기업의 진출이 확대되면서 신흥국에 대한 실물·금융시장 노출도 역시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중국을 향해 환율 조작국 지정과 징벌적 상계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칼날을 갈았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견제 정책을 통해 중국 경제가 위축되고 불안감이 확산하면 국내 금융시장도 덩달아 출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분석 결과에서도 한국 경제가 신흥시장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5월 신흥시장 31개국을 대상으로 정치·경제·사회·금융 능력을 보여주는 16개 지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체코 다음으로 리스크가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세부 지표 중 리스크 관리 면에서는 모로코, 인도, 이집트, 인도네시아에 이어 다섯 번째로 낮아 상대적으로 신흥국 리스크의 전염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 전문가들 "중장기 영향 불가피…협상력 키워야"

정부는 트럼프발 불확실성 리스크에 우리 경제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

국가신용등급, 외환보유액, 재정여력 등이 모두 '글로벌 톱' 수준인 만큼 단기적 충격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0일 미국 대선 직후 기자들과 만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가결 당시에도 금융시장에 단기적 충격은 있었지만 (곧) 안정됐다. 미국 대선 결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외환팀장은 "트럼프 당선 효과로 신흥국 통화들이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는 예측은 심리적인 부분 때문"이라며 "단기 충격에 버틸 수 있는 한국의 대외건전성은 시장에서도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트럼프 당선에 따른 영향이 불가피한 만큼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이 세계 통상 질서를 바꾸게 될 가능성에 대비해 양자 협상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은 단기적 영향보다는 중장기적인 잠재성장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더 중요하다"며 향후 트럼프의 공약이 어떻게 정책화되는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통상의 70∼80%는 외교력과 협상력이 좌우한다"며 "한국과의 교역이 미국에 긍정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중국·멕시코와 한국을 다른 카테고리로 인식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