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섭 경제부장
요즘 핫한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중세시대에 온 듯한 주황색 지붕으로 덥힌 성안의 모습과 코발트 빛 아드리아 해의 모습이 어우러지면서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아일랜드의 유명한 극작가 버나드 쇼가 '진정한 낙원을 찾으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했을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곳은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 중의 하나다.
국내 모 케이블방송의 '꽃보다 누나'에서 소개되면서 한국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지상낙원과 같은 이곳이 불과 몇십년 전만해도 포탄이 빗발치던 전쟁터였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

발칸반도의 강국이던 유고슬라비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칸반도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등 6개국이 합쳐져 세워졌다. 이름 그대로 남슬라브 민족의 연방국가가 세워진 것이다. 소련편도 미국편도 아닌 스위스와 같은 중립국 성격을 띠면서 유고는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뤄낸다. 1960년대에 이미 미국과 무비자 협정을 맺을 정도다. 당시 세계 4대 군수물자 수출국가이며 전투기 제작까지 가능했다.

하지만 1990년대 내전이 발발한다.
"처음엔 민족주의 때문에, 다음에는 종교 때문에, 다음은 내 땅을 되찾겠다고, 나중에는 아무도 이유를 모른 채 그냥 싸웠다"

가장 먼저 반기를 든 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였다. 유고연방국가에서 탈퇴하며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를 세르비아정부군이 무력을 앞세워 침공한다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 정부군의 막강한 화력에 무너지며 두브로브니크도 풍전등화의 상황을 맞이했다.
고대로마시대부터 번성한 도시국가로 중세시대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던 이곳을 지키기 위해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은 물론 유럽의 지식인들까지 목숨을 건 대항에 나섰다. 이들은 도시 해안에 배를 띄우고 '우리를 먼저 폭파하라'고 외치며 인간띠로 도시를 지켜낸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그럼에도 포격은 이어졌지만 세계의 비난여론에 떠밀려 더는 공격하지 못했다.

당시 세르비아 대통령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다. 그는 서방세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998년 코소보에서 알바니아계를 무참히 학살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학살자로 악명을 떨쳤고 인종 학살혐의로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 넘겨져 2006년 감옥에서 사망했다. 크로아티아의 보석 두브로브니크는 그렇게 지켜졌고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당시 드브로브니크의 시민들과 유럽의 지식인들의 목숨을 건 인간띠 운동이 지금의 아름다운 드르보브니크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아침부터 서울대병원에는 경찰병력이 집결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쌀값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물대포에 맞아 숨진 고 백남기 농민을 강제부검하기 위해서다.

이에 맞서 시민들은 쇠사슬로 몸을 묶고 인간띠를 만들어 경찰진입을 막고 있다.
이 사건은 발생부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치권은 물론 시민들의 반응이 뜨겁다. 일베와 이에 동조한 몇몇 정치인에 의해 제기됐던 '빨간 우의 폭행설'도, 서울대병원 주치의가 그토록 우기고 싶었던 '병사 논란'도 이미 사실과 다름이 밝혀진 상태다.
특히 어젯밤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는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에 대한 과학적인 심층보도로 시민들의 호평을 받았다. 경찰 발표대로 물대포를 직사했더니 방탄유리가 박살하는 것을 넘어 철판까지 휘어질 정도의 살인적인 파괴력을 시민들은 TV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살인적인 물대포 직사로 인해 한 농민이 숨졌다는 것을.

하지만 경찰은 이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도 마찬가지다. 경찰로 책임이 밀려오면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죽음을 놓고 지키기 싶은 것이 이리도 다를 수 있을까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고작 자기 자리 하나 지키자고 국민들을 겁박하는 위정자들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그들은 강제부검의 의지를 꺾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두브로브니크를 파괴하려는 포탄을 몸으로 막아낸 유럽의 지식인들의 인간띠처럼 우리는 오늘 고 백남기 농민을 지키는 시민들의 고귀한 인간띠를 다시금 목도하고 있다. 그리고 막아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더 진전된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