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 작가· <13억 인과의 대화> 저자
▲ 최종명 작가· <13억 인과의 대화> 저자

1978년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의 방문을 시작으로 1981년 8월 카터, 1984년 4월 레이건, 1985년 9월 닉슨, 1998년 6월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달려갔다. 2004년 10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 2007년 11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2013년 한국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정상이 늘 찾던 곳, 바로 시안의 병마용이다.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병마용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1호 갱에 도열된 군단의 웅장한 모습에 놀란다. '세계 8대 기적'이라는 칭송에 손뼉까지 칠 정도다. 문화대혁명 막바지 1974년 3월, 우연히 세상에 출현한 병마용은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를 지향하는 거대한 중국에 딱 어울리는 유산이다. '진시황 병마용박물관'은 공식 명칭이다.

이 박물관 이름에 감히 '진시황'을 떼어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 80세인데도 끊임없이 병마용을 연구하고 있는 천징위안씨다. 베이징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던 2005년 12월 무렵, '병마용과 진시황은 무관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그의 주장은 논리적, 학술적이었고 게다가 집요했다. 병마용 모습이 궁금해서 이듬해 5월 직접 시안을 찾았다.

그의 주장은 대체로 명쾌하다. 진시황릉과 병마용은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대략 2㎞가 넘는 거리에 위치하는 것부터 고대 건축방식에 어긋난다. 진시황은 3백장(丈) 이내에 황릉을 조성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아무리 넓어도 700㎡를 넘지 않는다.

전국을 통일한 역량을 지닌 나라답게 진나라는 군복 색깔이 모두 흑색에 가까웠다. 병마용은 공기와 접촉한 후 40년이 지났어도 오색찬란하다. 도량형과 문자, 화폐 등을 표준화하고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는 도로도 그 길이가 일치했다. 당연히 도로에 맞게 마차를 운용했다. 병마용에서 출토된 마차들은 크기도 서로 다르다.

병마용의 상투는 모두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져 있는데 초나라 풍습이다. 더구나 병마용이 서 있는 방향은 모두 초나라를 향하고 있다. 천 씨는 이를 근거로 병마용의 주인이 진시황이 아닌 초나라와 관련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줄곧 진나라 소양왕의 어머니 선태후(宣太后)의 부장 묘라고 설파한다. 진시황의 고조모다.

2015년 11월30일. 베이징TV와 둥팡TV는 동시에 드라마 <미월전>을 처음 방영했다. 2016년 1월9일 종영 때까지 두 TV는 시청률 1, 2위를 독점하고 서로 다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전국 50개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시청 점유율이 평균 7%를 넘겼는데 채널이 엄청나게 많은 중국에서 폭발적인 대기록이다.

초나라 공주 미월이 진나라로 건너가 우여곡절 끝에 태후가 되기까지의 인생역정을 펼치는 내용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방송 채널도 수입해 방영했다. 역사드라마를 깔끔하게 잘 만드는 중국답게 구성과 품질이 꽤 기대 이상이다. 천 씨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해 '진시황과 병마용이 무관하다'는 글을 10년 전부터 써왔고 문화여행 때마다 강의하며 졸저에도 담았기에 덩달아 기분이 좋다.

미는 초나라 왕족 특유의 성(姓)이다. 미월(羋月)이 곧 진선태후다. 사마천 <사기>에도 아들 대신 섭정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실존 인물이다. 진시황에 버금가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출토된 병마용에는 독특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비(脾)자 모양과 비슷해 그 동안 모두 한 글자로 생각했지만 천 씨는 병마용의 주인의 이름인 미월, 두 글자로 나누어서 볼 것을 밝히고 있다. 얼핏 보면 비(卑)와 미가 비슷해 생긴 오해라는 것이다.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끌자 병마용 주인을 둘러싼 논쟁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제작진과 사전교감이 전혀 없던 천 씨는 진상을 밝힐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고 기뻐하고 있다. 병마용의 진상을 대중 앞에 드러내려는 평생의 업적이 평가받을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병마용이 발견된 시점은 문화대혁명 마지막 해였다. 정권을 농락하던 4인방은 중앙집권적 카리스마를 유지하고자 '병마용은 곧 진시황'이라는 선입견으로 고고학계와 언론계에 명령했다. 천 씨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지금껏 '진시황 병마용박물관'을 찾은 수많은 사람에게 '역사 왜곡'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 높이 솟은 진시황 조각상을 미월의 늠름한 모습으로 대체될 날이 올 것인가?

역사에 대한 바른 평가를 공유할 것인가, 아니면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를 후세에게 가르칠 것인가? 병마용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중국의 역사가 세계에서 반듯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만큼 병마용은 중국을 상징한다.

역사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권력을 쥐고 있다고 역사를 되돌려 볼 수 있다고 착각한다면 근시안일 뿐이다. 문화대혁명 당시 문화와 이데올로기 부문 총 책임자이던 장칭이 바로 왜곡 명령의 당사자였다. 그녀는 체포, 구금, 재판 후 자살로 일생을 마쳤다. /최종명 작가· <13억 인과의 대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