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섭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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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중국 외교부가 회의 참석 영부인들에게 비단 제품 세트를 선물한다고 한다.

항저우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비단 생산지이기도 하지만 중국 정부가 비단을 국가 선물로 증정하기로 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비단은 고대 한나라(206 BC-220 AD)부터 동서양 교역에서 가장 중요한 제품이었고, 지금도 도자기와 함께 중국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과거 비단길, 즉 실크로드를 개척해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책의 포석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실크로드는 동서양을 잇는 문명의 길이었다. 이 길을 차지한 국가는 제국으로 성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고대 왕국의 흥망성쇠가 결정됐다.

중국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는 유라시아 곳곳에 상품과 종교·문화를 잇는 다양한 길들을 만들어냈다. 한나라와 로마로 대표되는 고대에는 육로 실크로드가 번성했고, 이슬람이 번성한 중세시대에는 육로가 막힌 대신 해상 실크로드가 그 역할을 이어갔다. 이후 세계의 주도권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옮겨간 사이 중국은 오랫동안 엎드려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강국으로 다시 부상한 중국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21세기 신 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를 내놓았다.

한국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으로 경제협력에 주목했고, 러시아도 극동지역 개발을 위해 '신동방정책'을 추진 중이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가 다시 실크로드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중국의 신 실크로드 전략은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잇는 일대일로 정책이 중심이다. 시진핑 주석이 2013년 9월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순방에서 처음 제시한 전략이다. 일대일로가 구축되면 중국을 중심으로 육·해상 실크로드 주변의 60여 개국을 포함한 거대 경제권이 구성된다.

유라시아 대륙에서부터 아프리카 해양에 이르기까지 고속철도망을 통해 중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고 대규모 물류 허브 건설, 에너지 기반시설 연결, 참여국 간의 투자 보증 및 통화스와프 확대 등의 금융 일체화를 목표로 하는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거대한 계획이다.

한국이 내놓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은 중국의 일대일로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유라시아 국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공식 주창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은 세계 최대 시장인 유라시아 국가 간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북한의 개방을 유도, 한반도 긴장을 완화한다는 구상이다.

핵심 전략은 부산-북한-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관통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와 전력·가스·송유관 등 에너지 네트워크 구축이다.

낙후된 극동지역 개발을 위해 추진 중인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은 대표 낙후 지역인 극동지역을 한중일과 함께 개발하고 이를 통해 러시아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탈출하는 한편 에너지·자원 수출판로를 동북아지역으로 다변화해 서유럽에 치중돼있는 에너지 수출의존도를 완화하려는데 있다.

이들 3개국의 실크로드 전략은 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신동방포럼'과 4일부터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G20정상회의'에서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물론 한반도 사드배치로 인해 미중간 대립양상은 첨예해 질 것이고 한국도 실리 챙기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고 할지라도 각 국의 실크로드 전략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국내도 정부 정책에 맞춰 각 지자체들의 실크로드 정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벌써부터 강원도와 부산은 이들 정책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위한 재해석 작업이 한창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의 핵심인 '실크로드 익스프레스'의 출발역인 부산은 육로와 해상으로 유럽까지 경제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선제적 정책 마련에 들어갔다. 강원도도 러시아의 극동지역 개발과 중국의 북동부 지역개발, 북한의 나진 선봉 개발로 이어지는 환동해 개발 구상에 적극 참여할 움직임이다. 경기도도 평택항을 중심으로 한중 열차페리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 지자체 움직임과 달리 인천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전부터 추진되던 인천~개성~해주를 잇는 경제벨트 구상은 남북간 첨예한 대립으로 수면 밑으로 사라져 버렸고, 개성공단마저 폐쇄된 상황에서 남북협력사업이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의 새로운 실크로드 구상에서 인천의 역할은 무엇인지 인천 차원의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창섭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