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비상사태 선포…2002년 남동부서 종료된 이후 처음
법조·교육계까지 대거 제거 나서자 국제사회 우려…에르도안 "간섭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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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제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3개월간 사실상 초법적 권력을 확보했다. 

AFP, dpa통신 등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거쳐 내각회의를 열고 나서 민주주의와 시민들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목적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민주주의와 법치, 우리 시민들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선포 직후 그 내용을 담은 관보가 발행됨에 따라 국가비상사태는 공식 발효됐다. 

오는 21일 열리는 터키 의회에서 국가비상사태 기간을 수정할 수도 있지만 그럴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관측된다. 

집권 정의개발당(AKP)은 터키 의회의 전체 550석 가운데 절반을 훌쩍 넘는 317석을 장악하고 있다. 

터키의 비상사태 선포는 1987년 쿠르드 반군 격퇴를 위해 남동부 지역에 대해 선포된 것이 2002년 종료된 이후 처음이다.
 

국가비상사태 중에 대통령과 내각은 의회 입법을 거치지 않고 새로운 칙령을 만들 수 있으며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기본권과 자유를 제한하거나 유예할 수 있다.

법률에 해당하는 효력이 있는 칙령은 당일 의회 사후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의회 역시 작년 총선에서 압승한 에르도안의 AKP가 장악하고 있다.

칙령은 헌법재판소의 심의도 받지 않는다. 이와 별개로 터키 수사당국은 이날 헌법재판관들도 쿠데타 혐의로 체포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비상사태 중에는 각 지역 주지사 권한이 늘어나며 군 병력은정부 지시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터키 주지사는 선출직이 아니라 대통령이 내무부 추천을 받아 지명한다. 

야당·언론 탄압으로 이미 권위주의적이라는 서구권 비판을 받아온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사실상의 입법권과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만큼 그는 앞으로 최소 3개월 동안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됐다.

터키 정부는 지난 15일 밤부터 16일 새벽까지 이어진 일부 군부 세력의 쿠데타 시도를 진압한 이후 그 배후로 에르도안의 정적인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을지목했으며 귈렌과 연계된 혐의로 6만명을 직위해제하거나 구속했다.

쿠데타에 직접 가담한 군 장병뿐 아니라 경찰관, 공무원, 판·검사, 대학 총장·학장·교수, 공·사립학교 교직원까지 사회 각계 인사들이 숙청 대상에 대거 포함됐다.
 

체포된 판사 중에는 헌법재판관 2명도 있다고 터키 민영 NTV는 전했다.

또한 병사 수천 명이 구금된 가운데 일부는 신체에 멍이 들거나 다친 모습이 잇따라 목격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군의 바이러스는 박멸돼야 한다"고 재차 다짐했으며 곧바로 한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도 "다수가 체포됐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 대규모 숙청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런 터키 상황에 서구권과 국제기구들은 인권침해와 독재체제 전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자이드 라드 알후세인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성명을 통해 "터키 정부가 인권 보호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이 없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의 쿠데타 후속 조처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것이라고 재차 주장하면서 "간섭하지 말라"고 응수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우리는 민주적인 의원내각제로 남을 것이며 그로부터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며 "그러나 국가의 평화와 안정에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무장관이 터키가 쿠데타를 숙청의 '백지수표'로 삼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자기 일에나 신경 쓰라"며 코웃음을 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