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아파트 실명제 실시
주민들 직접 건의해 실천
구매탄 시장 상인들 동참
전용 '밝은 봉지' 제작 중

▲ 지난 18일 오후 수원시 영통구 '구매탄 시장'에서 한 상인이 식재료를 밝은 색의 봉투에 담아 판매하고 있다. /김수연 기자 ksy92@incheonilbo.com

"환경을 지킬 수도 있고, 아파트의 관리도 수월해지고, 주민들의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어요"

지난 18일 오후 6시쯤 총 85세대가 거주하는 수원 영통구 성신아파트에서 쓰레기봉투를 내다놓을 시간이 되자 주부들이 20L 등 다양한 크기의 쓰레기봉투를 손에 들고 나왔다. 이 쓰레기봉투 전부에는 검은색 펜으로 쓴 네모난 스티커가 일제히 붙어있었다.

성신아파트는 관내 7개 아파트 중 유일하게 주민이 생활쓰레기를 배출하면서 아파트명과 동·호수를 적어 내놓는 쓰레기봉투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들 주민은 지금까지 인근 아파트 단지와 비교했을 때 재활용 분리배출량이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자 지난 6월부터 주민 스스로 "생활쓰레기를 줄이는 모범 아파트가 되겠다"며 1명도 빠짐없이 쓰레기봉투에 자신의 동·호수를 적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무단투기로 발생하는 악취, 오염 등이 1달 새 전부 사라졌고, 70대 경비원이 쓰레기 보관소를 관리하는데도 수월해졌다.

'환경·관리' 두마리 토끼 잡다

초반에는 일부 주민들이 기존과 달라지는 투기 방식 때문에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환경', '관리'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동참하고 있다.

여기에 주민들은 동사무소 직원들이 종량제 봉투를 파봉해 쓰레기 배출량 등을 검사하는 '성상분석'을 자신들이 직접 하겠다며 동사무소에 건의했다.
관 주도에서 주민 주도형으로 바꿔 '공동체' 의식을 심겠다는 취지다.

이 아파트 주민인 함난희(47) 매탄7통장은 "그동안 버리는 사람, 치우는 사람 따로 있었는데 이제는 주민 스스로 쓰레기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며 "관이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주민이 직접 아파트의 모범을 보여주겠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신아파트의 쓰레기 줄이기 움직임은 지난해 쓰레기 실명제를 최초로 실시해 성공시킨 평창군의 사례와 유사하다.

평창 진부면은 주민들이 먼저 "쓰레기에 이름을 써서 내자"며 자체 건의한 이후 사생활 침해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 100% 주민참여로 쓰레기 배출량을 35% 이상 줄였고 연 2억원을 절감해 쓰레기 실명제 성공지역으로 불린다.

▲구매탄 시장의 밝은 봉투 사업

45년 전통 영통구의 유일한 전통시장인 '구매탄 시장'은 손님들에게 음식과 식재료 등을 검은 봉투에 담아주지 않는다.
검은 봉투가 무단투기용 비닐봉지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시장 상인들은 영통구의 쓰레기 저감 사업의 소식을 듣고 구청 관계자들과 함께 수차례 토론회를 거치는 등 아이디어를 모색한 결과 손님들에게 검은 봉투가 아닌 밝은 색의 봉투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시행 약 1달이 지난 18일에 구매탄시장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채소, 생선, 정육점 등에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등의 형형색색의 봉투가 걸려있었다.

한 쪽에서는 "왜 검은봉투에 담아주지 않느냐"라는 손님의 질문에 "밝은 봉투가 무단투기를 없앨 수 있다"고 설명하는 상인들의 모습도 이채롭다.

아직 시행초기라 검은 봉투를 동시에 제공하는 상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상인들은 영통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노랑, 파랑의 시장 전용 봉투를 자체적으로 고안해 앞으로 밝은 봉투 사용을 60%이상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상인들은 밝은 봉투 사용에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시장의 로고를 새기는 등 진일보 하고 있다. 구매탄시장 전용 밝은 봉투는 이르면 이달 제작이 완료된다.

시장에서 만난 한 주부는 "봉투가 밝으니까 오히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불법투기를 없애는 하나의 방법이라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섭 상인회장은 "대형마트에서는 종량제봉투를 제공하고 있는데, 왜 전통시장은 못하냐는 생각에서 밝은 봉투를 사용하기로 했다"며 "손님들이 불편할 수 있지만 상인들이 함께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인터뷰 / 전문용 매탄1동장


"행정보다 주민 의지 영향 커 … 작은 실천, 전국 확대됐으면"

"버리면 폐기물이고, 줄이면 자원입니다. 주민들과 함께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전문용 매탄1동장(사진)은 19일 오전 인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행정이 아닌 주민의 손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전 동장은 "매탄동에서는 아파트 단지들끼리 쓰레기 감량과 관련한 경쟁의식이 생기는가하면 주민이 먼저 나서서 추진 방안을 동사무소에 건의하는 등 진기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주민의 역량이 가장 중요한 쓰레기 저감 사업인 만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행정기관이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홍보부터 실천까지, 주민의 입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쓰레기 저감 운동 확대를 위해 우리 동이 우선 노력하겠다"며 "개입하지는 않으면서 주민에게 작은 혜택이라도 줄 수 있는 제도의 신설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동장은 마지막으로 "쓰레기가 감량된 것은 당연하고, 전반적인 환경이 바뀌면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도 기대하고 있다"며 "작은 시작이 나비효과가 되서 영통구 전체로, 수원시로, 더 나아가 전국으로 확대되는 지속적인 환경운동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영통구에서 일어나는 신풍경을 환경단체에서도 좋은 사례로써 지켜보고 있는 상태다.

쓰레기 문제 전문시민단체인 자원순환사회연대 김태희 기획팀장은 이날 "개인정보나 사생활침해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지자체 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데, 강제가 아닌 주민들이 직접 나선다면 근본적으로 시민의식과 정책이 같이 나아간다는 의미가 있다"며 "주민들과 함께 소통의 시간을 충분히 갖고 원천적인 문제들을 풀어나간다면 쓰레기를 줄이는 모범사례로 남을 듯 하다"고 설명했다.

환경운동연합 이세걸 사무처장도 "95년 종량제 봉투 추진 이후 쓰레기량이 줄어드는 등 성과는 있지만 시민의식이 부족하면서 무단투기와 같은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쓰레기 실명제는 본인이 재활용가능한 자원이 들어가는 것을 막게 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쓰레기 저감 사업의 경우 어느 정도 강제적 수단이 없으면 실패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지자체가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해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주민 입장에서도 많은 각도로 고민을 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글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사진 김수연 기자 ksy92@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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