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만에' 돌아온 고향 인천서 '인술' 펼친다

 


유쾌한 첫 만남이었다. 47년 만에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만난 이들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듯 했다. 국내 이비인후과 분야 최고 권위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그이지만, 이웃 아저씨 같은 다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정권(65) 한림병원 진료원장. 송림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중, 제물포고에 이어 연세대 의대에 입학하며 의사의 길을 걸어 온 이 원장.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안·이비인후과병원장을 끝으로 그가 올 3월 인천으로 돌아왔다. 식지 않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는 그의 귀향 이야기를 들어봤다.

코는 내 운명.

과거 이비인후과는 그리 인기가 좋은 분야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감각 기관을 다룬다는 것이 그에게는 큰 매력이었다.

남들이 인기있는 분야에서 서로 경쟁할 때 그는 소신있게 자신의 영역을 찾아간 셈이다.

특히 '코'에 매력을 느낀 그는 누가 뭐래도 '코' 전문가다. 이런 이 원장의 선택은 옳았다. 시간이 흐른 지금, 이비인후과에 대한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호흡기 질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호흡기 질환에 대한 관심이 무척이나 커지고 있죠. 감각기가 좋지 않아지면 노인들은 소외감이나 우울증에 빠지게 되죠. 고령화 사회에서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감각기입니다."

여기에 미세먼지가 화두인 요즘, 이비인후과는 시민들에게 더욱 친근한 영역이 됐다. 그는 코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코가 나쁘면 건강이 다 무너집니다. 사람들은 산소의 소중함을 모르듯, 코의 소중함도 모릅니다. 코는 필터 역할을 해줍니다. 미세먼지 대책이 사회 이슈가 되고 있죠. 코 기능이 무너지면 천식 같은 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호흡기 내과 선생님들과 협진을 하는데 기관지가 좋지 않은 사람 중에 코가 정상인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코 건강에 대한 조언도 귀띔했다.

"입으로 숨을 오래쉬면 호흡기가 안 좋아 지고, 모든 건강이 나빠집니다. 숨 쉬는 것은 생명의 근원이죠. 입으로 숨 쉬는 것과 코로 숨 쉬는 것은 결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코로 숨 쉬지 않으면 학습능력도 떨어집니다. 또 코로 숨 쉬는 것이 장수하는 길입니다. 코로 숨 쉬는 것이 힘들다면 서둘러 병원을 찾으세요."

환자는 환자다.

 

 


지난 1976년 이비인후과에 입문한 이후, 벌써 40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다. 흐른 시간만큼이나 그가 쌓은 이력도 하나둘이 아니다. 국내에서 코골이 레이저 수술을 처음 진행한 이도 이 원장이요, 과거 환자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축농증 수술을 편하게 바꾼 이도 이 원장이다.

국내 유명 병원에서 '코' 전문의로 그가 만났던 환자는 셀 수 없을 정도다. 대령통은 물론 재벌총수,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등을 두루두루 환자로 만나온 그다.

"다양한 직업,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죠. 속된 말로 센 사람도 있었죠. 그러나 그냥 다 환자에요. 더해주거나 덜해주거나 그런 것 없었습니다."

'누구나 같은 환자다'라는 생각은 처음으로 의사 가운을 입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진료 과정에서 편견은 있을 수 없습니다. 후배들한테도 항상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떤 VIP라도 나에게는 환자죠. 병원은 올바른 치료를 해야 합니다."

실력을 바탕으로 한 이런 그의 소신은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당선 되기 이전에 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시게 됐고, 그때 의사와 환자로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당선 이후에도 계속 이비인후과 주치의로 대통령 뿐 아니라 가족들 건강을 맡았죠."

대통령 주치의로 화려한 명성만 얻었을 것 같은 이 원장에게도 고난의 시간들은 있었다.

"항상 수술이 의사가 의도한 100%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죠. 이렇다 보니 마음 아픈 환자도 있었습니다. 한 환자와는 5년 이상 인연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의사들도 실수를 했다면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잘못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유있는 귀향.

 


그가 고향 인천, 그것도 인천 계양구 한림병원 진료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데는 다 이유가 있다. 40년이 넘는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인천은 여전히 그의 어머니가 살고계신 곳이며, 그의 마음의 안식처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을 떠나게 됐을 때, 먼저 머리에 스친 곳도 바로 인천이었다.

"부모님이 인천에 계셔서 계속 내려왔지만 고향을 위해 무엇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나의 친구, 친척들이 있는 인천에서 제가 가진 재주로 코병을 고쳐주는 것이 좋겠다고."

특히 그는 국내 대형 병원에서 그가 쌓아 온 지식을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종합병원인 한림병원을 택했다고 말했다.

"한림병원은 2차 진료 기관으로 인천지역에서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더군요. 제가 가진 3차 진료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2차 진료에 대한 표준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인천 시민들이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건강한 병원을 말이죠. 요즘, 대학 시절 느끼던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바쁜 그는 아내에게 미안함 마음도 전했다. 같이 하고 싶은 일이 많은 텐데, 여전히 병원 일에 매달리고 있는 자신을 격려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림병원 진료원장이 된지 5개월째. 그러나 그의 열정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 못지않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한림병원이 2차병원을 선도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또 후배 의사들에게 용기를 주며 함께 걸어갈 겁니다. 이는 곧 제 고향이 인천 사람들을 위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여기에 가끔 병원을 찾는 고향 친구들과의 만남은 활기찬 그의 삶에서 기분 좋은 덤이다.

"제가 가진 능력을 인천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베풀 겁니다."


/글 이은경 기자 lotto@incheonilbo.com
/사진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