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 잊고사는 젊은이들 우리를 한번 더 기억해줬으면"

1952년 사천강 … 해병 1전투단
중공군 포격에 전우 7명 쓰러져
소대원과 점령당한 기지들어가
적군 8명 사살 … 지원군과 공격
큰 공 세워 '을지·화랑무공훈장'


1952년 9월6일, 해병 제1전투단 3대대 10중대의 작전지인 황해북도 개성시 사천강 지구. 신현우(88·사진) 소대향도는 여느 때처럼 땅 속 전초기지에서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때 갑자기 고막을 찢는 듯한 소리가 천장을 울렸다. 중공군의 계속되는 포격에 천장이 무너졌다.

충격으로 같이 있던 전우 7명은 흙먼지 등으로 질식해 쓰러졌다.

신 옹과 또 다른 하사관만 겨우 의식이 있었다. 신 옹은 땅굴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흙으로 뒤덮여 있는 천장을 칼로 수차례 세게 쳤다. 그가 세게 친 칼 끝에 지표면에 있던 총류탄 박스가 가까스로 닿았다. 신 옹은 겨우 총류탄 박스 손잡이에 칼을 걸어 힘껏 잡아당겼다. 줄을 당기는 힘에 흙 천장이 무너지면서 겨우 흙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신 옹은 언덕 아래에 있는 아군 기지를 발견하고, 굴러 내려가 벙커로 몸을 숨겼다. 목숨은 건졌지만 고지를 점령한 중공군은 갈수록 기세등등했다. 신 옹은 무전기로 "백두산, 나와라 오바! 두만강이다"라며 본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 후 지원군이 적을 향해 포를 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 옹은 그들과 함께 수류탄을 던져 공격했다. 또 점령당한 기지에 뛰어 들어가 소대원과 함께 적군 8명을 사살했다. 그는 지원군과 중공군을 공격했고, 결국 적들을 후퇴하게 만들었다.

신 옹은 6·25전쟁이 발발한지 66년이 지났지만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는 아군 기지를 재탈환하고 적군을 후퇴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워 그 해 을지·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미군은 그 때 중공군이 쏜 포탄을 7000여발로 추정했다.

신 옹은 "그 때는 어린 패기였는지 몰라도 우선 나라도 살아서 기지를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뒤 상황을 가리지 않고 무작정 적군을 향해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이면 90세인데 지금 전쟁이 발생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 때처럼 뛰어들고 싶은 마음 뿐"이라며 "하지만 다 늙어버려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겠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피 흘려 어렵게 나라를 지킨 만큼 그가 강조하는 것은 철저한 안보다. 그는 "사람들이 안보에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며 "'요즘 같은 때 전쟁이 나겠느냐'라는 말을 하지만 방심하다 큰 코 다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옹은 "외국에서는 참전 용사들을 영웅처럼 대우하는데 대한민국은 어째서 나라 지킨 사람을 괄시하는지 모르겠다"며 "아픈 역사를 잊고 사는 젊은이들이 우리를 한번만 더 기억해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걸로 됐다"고 말했다.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
/사진 이상훈 인턴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