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인천 연수구청장
▲ 이재호 인천 연수구청장

지난 4월25일 인천시 행정심판위원회는 한국가스공사가 연수구를 상대로 제기한 'LNG 생산기지 증설 관련 건축허가 의무이행 청구'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가스공사가 송도 LNG저장탱크 증설을 위해 연수구에 신청한 건축허가에 대해 연수구가 '주민의견 수렴' 보완을 이유로 허가를 하고 있지 않는 것은 부작위로 위법하다는 것이다.

즉, 해당 건축허가 신청에 대해 '보류'는 위법이므로 '승인'이나 '불허' 둘 중 하나의 결정을 내리라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행정심판위원회는 가스공사 측에 조속한 시일 내에 주민설명회 등 보다 적극적인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이행할 것을 주문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앞뒤도 맞지 않는 결론이다. 사실상 연수구민에 대한 겁박으로 느껴지고, 속에서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만 찬찬히 한번 따져보자. 지난 2014년 8월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는 가스공사의 송도 LNG생산기지 증설안을 조건부 승인했다.

당시 내걸었던 세 가지 조건은 첫째 강화된 안전기준 적용, 둘째 주변지역에 대한 보상지원, 셋째 LNG탱크 증설에 대한 다각적인 주민의견 수렴 등이다. '안전기준의 강화? 뭘 얼마 만큼? 주변지역에 대한 보상? 누구에게 얼마나? 다각적인 주민의견 수렴? 누구를 어떻게?' 이처럼 명확한 기준도 근거도 없는 애매모호한 조건을 내걸고 승인을 해줘놓고는 마지막으로 연수구에 폭탄돌리기를 한 셈이다. 저장탱크 증설을 위한 건축허가 신청이 마지막 행정절차이기 때문에 주민의 안전과 국가 기반시설의 필요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보완하고 다시 한 번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천시 행정심판위원회는 이를 충분히 고려하고 이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인가? 위원회가 가스공사에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적극적으로 이행하라고 주문한 것은, 위 세가지 조건 중 '다각적인 주민의견 수렴'을 가스공사가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을 위원회 스스로 인정한 것 아닌가? 바로 그 때문에 연수구가 가스공사의 건축허가 신청을 계속 보류해왔던 것인데, 그것이 어찌해 위법인가?

가스공사는 아마도 이제 한시름 덜었다고 느낄지 모른다. 어찌됐건 연수구는 가스공사의 건축허가 신청에 대해 조만간 가부결정을 내려야 될 입장에 처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반드시 알아뒀으면 한다. 가스공사가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을 등에 업고 궁지에 몬 것은 건축허가 신청을 보류해 온 필자와 관계 공무원들이 아니라 32만 연수구민이라는 것, 아니 나아가 300만 인천시민이라는 것 말이다.

송도LNG 기지에서 수도권 지역에 송출하는 LNG 양을 비율로 따져보면 2013년 기준으로 인천이 62.6%, 서울과 경기를 합쳐 37.4%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인천으로 송출되는 LNG 양의 86%가 화력발전소의 발전용으로 사용된다. 이를 제외하면 인천시민이 순수하게 사용하는 LNG는 전체 송출량의 8.8%, 즉,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인천에서 생산한 전기 중 20% 정도만 인천에서 사용된다. 이처럼 송도LNG 기지로 인한 혜택은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이 훨씬 많이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가스 단가를 비교해 보면 인천시민들이 서울에 비해 비싼 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뭔가 상당히 억울하다. 광역 시설물이 설치된 지역주민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그 시설물을 사용하는 타 지역주민은 정당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게 합리적인 것이 아닌가? 현재 인천시민들이 팔당댐의 수돗물을 서울시민보다 비싸게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뿐만인가? 영흥화력발전소와 수도권매립지를 둘러싼 논란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거칠게 얘기하면 그 기저에는 서울의 머슴 취급을 받고 있는 인천시민들의 억울함이 깔려있다. 도대체 인천은 언제까지 서울과 경기도로부터의 홀대를 참아내며 정당한 대가도 받지 못하는 무능한 머슴같은 존재로 시민들을 격하시킬 것인가?

인천시는 인천시 스스로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로부터의 존중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이상 인천시민들에게 정부나 서울, 경기도로부터의 저 같은 푸대접을 감내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천시가 지금 그토록 강조하는 '가치재창조'란 인천시민들이 억울함을 씻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가스공사에 하나만 당부하고자 한다. 문제의 핵심은 지역주민의 안전이다. 그 때문에 주민의견 수렴이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아무런 권한 없는 구청장과 일선 공무원을 대상으로 더이상 행정심판이나 소송으로 힘 빼지 말고 진정 힘써야 될 부분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았으면 한다. /이재호 인천 연수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