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예총 사무처장

스무살에 시(詩)를 쓰고 서른에 소설(小說), 불혹을 넘겨 희곡을 쓴다는 말은 연극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녹아있는 문학의 한 장르라는 표현이다. 인간이 생(生)하여 몰(歿)할 때까지의 과정이 한 편의 연극이라는 표현은 어색함 없이 아주 적절한 표현일 수가 있는 것이다. 종합예술로서 손색이 없다는 연극, 무언가 모르게 아쉬운 점이 요즘에 많은 것 같다.

지난 1989년에 시작돼 한 여름을 공연기간으로 '여름휴가형' 공연축제로 27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꾸준히 이어져온, 국내 극단은 물론 해외 극단들까지 참여하는 경남 '거창'연극제가 소통이랄까 협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 개최 포기를 선언한 일이 정말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제발 우려로 끝을 내고 다시 본 모습의 '거창연극제로'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공공기관의 '행정권 남용'을 비판하며 포기철회를 촉구하는 쪽이나 새로이 선임된 운영위원회와 주관단체의 대립이 눈 녹듯,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원만한 해결이 연극인들을 보는 민낯의 미안함을 덜었으면 좋겠다.

예술이 표현의 자유에 부딪히고 갑론을박 비민주적 권력에 맞서 시위를 하며 곤혹스러운 사태를 경험하고 있는 예술인 그리고 예술단체들을 가끔 본다.

대학로의 연극인들이 '검열'이라는 두음절에 연극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 지금의 연극판이다. 성명을 내고 시위를 하고 토론을 하며 검열에 대한 저항을 표출해 왔지만 무대 위에서 연극으로 말하는 공연을 한다고 한다. 군중들을 향해 부르짖는 시위형이 아니라 검열에 대응하는 공연형으로 연극을 구원하고 지원금을 무기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려는 상황을 벗어보려는 신선한 충격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육성지원금 심의 과정에서 나타난 불합리성과 탈락, 지역성을 벗어난 공통분모 없는 결론에 가끔은 지원신청단체들이 아예 거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시민과 예술가의 권리를 찾는 저항"의 결과는 일체의 지원금 없는 모금 후원에만 의존하는 재원 마련, 공공기관의 지원금으로부터 자유로운 발언의 장으로 곧 예술인들의 의지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공연비용 최소한의 모금후원을 '소셜펀딩'에서 모금한다니 예술인들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전 자생력으로 이해함이 참으로 혁명다웁기까지 하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많은 이야기의 흐름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어떤 이야기들은 쉽게 휘발되지 않고 남아 기억의 언저리를 떠나지 않는다. 2002년으로 한참 뒤돌아 인천의 연극을 들여다보자.

함세덕과 인천의 함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극의 바늘과 실로 전국적인 연극의 대명사이다. 인천적이며 '서정적 리얼리즘'의 개척자로서 그의 연극은 아름다운 모국어와 조화돼 연극으로 승화하기에 이르렀다. 35세에 요절한 극작가로 인천 화평동 455번지 출생, 성장지로서 출생 100년이 지나 이제는 월북(88년 해금)과 좌익 그리고 친일이라는 정체적 제약은 사라져 연극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함세덕 연구소가 탄생됐고 공모를 거쳐 인천예술(연극)의 랜드마크화 하고자 지원금을 받아 운영했으나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주저앉은 행정과 운영의 미흡, 참 어처구니없었다. 금년까지 환산하면 15년차의 '함세덕과 인천연극제전' 어느 지방에서도 따라 올 수 없는 우리만이 누릴 수 있는 트랜드 이건만 무엇이 잘못돼 키우고 누리질 못했는가는 반성해 볼 일이다. 손에 쥐어줘도 못 먹고 보조금에 의존하며 관행에 젖은 그런 예술 이제 버릴 때가 아닌가 한다.

'거창 연극제'가 다시 원만히 일어서고 저항의 신선한 충격파를 던질 대학로의 연극 그리고 이제라도 살려 가야 하는 '함세덕과 인천연극' 연극인들의 가슴에 둥지를 틀었음 싶다. /인천예총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