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사고팔며 이웃간 情 새록새록


정기적 벼룩시장 개최 … '소통의 장' 마련
황어장터서 영화상영 … 여름 캠핑 계획도

네모난 건물들이 가득한 도심. 누가 더 높은지 서로 키 자랑이라도 하듯 우뚝 솟은 고층빌딩 숲 속에서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쉽게. 편리성을 추구하며 개발을 좇다 보니 풀 내음 가득하던 농촌지역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농사를 짓던 논과 밭에는 딱딱한 콘크리트가 덮이고 그 위에 재미없는 건물들이 가득 들어선다. 개발 위주로 변모해가는 안타까운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농촌의 모습과 도시 두 가지 모습을 지키고 있는 곳이 있다. 계양역에서 경인아라뱃길을 건너면 마주할 수 있는 아담한 마을 장기동이다.

이 곳 주민들은 지난 2010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웃 간 소통을 이어왔다.

동네의 문제점들을 공유하며 개선 방향을 찾고 때론 자신만 알고 있기 아까운 좋은 글귀들을 공유했다. 하지만 온라인만으로는 소통의 한계가 있었다.

실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니 친밀감은 생길 수 없었고 이웃 간의 정도 느낄 수 없었다.

"주민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

가장 먼저 시작한 활동은 벼룩시장.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봄날, 저마다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집에서 쓰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 깨끗하고 좋은 물건들을 한데 모았다.

아이가 자라 입지 못하는 귀여운 옷들, 놀다 지겨워진 장난감과 차곡차곡 마음의 양식을 채워주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까지 이웃들의 예쁜 마음들이 모여 자리를 가득 메웠다.

▲ 벼룩시장에 참여한 주민들의 모습. /사진제공=행복한 장기동 사람들

물건들을 사고팔며 이웃들은 그동안 꺼내놓지 못한 이야기보따리를 하나 둘 풀어간다.

"어머, 바로 옆 동에 사셨어요?"

어느 집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눈인사만 나눴던 이웃들이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단단한 벽을 허물며 거리를 좁혀나간다.

이렇듯 정기적으로 열리는 벼룩시장은 매년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에는 뙤약볕에서 이를 이어가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 이때만 할 수 있는 특별한 행사는 무엇이 있을까?"

인천영상위원회에서 문화소외지역에 지원하고 있는 찾아가는 시네마 서비스를 이용해 '별빛영화관'을 열었다.

도심과 먼 장기동의 특성상 문화생활이 힘든 점도 고려했다.

3.1운동의 중심지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장기동의 자랑 '황어장터'에 영화상영차를 세우고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잡았다.

옆 자리에 앉은 이웃과 집에서 싸온 음식을 나눠먹으며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올해는 여기에 더해 색다른 행사도 고민 중이다.

계양초등학교 운동장을 빌려 영화도 보고 운동장 한 켠에 텐트를 쳐 아기자기한 캠핑을 진행할 계획이다.

여름밤을 알리는 매미 소리와 쏟아지는 별빛 아래에서 펼쳐지는 캠핑은 도심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지역을 위해 일하는 일꾼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봐야지 않을까요?"

지난달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맞춰 출마하는 후보자와 지역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대담·토론회를 가졌다.

단순히 집으로 배송되는 선거 홍보물만 보고 일꾼을 뽑기보단, 궁금한 점은 직접 물어보고 답변을 들으니 주민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다른 기관을 통해 일방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닌, 주민들의 뜻이 모여 만들어진 자리였기에 의미는 더욱 깊었다.

수십 년간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점들은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주민들과 소통은 어떻게 할 것인지, 진짜 지역을 위해 일할 일꾼인지 등을 고심하고 고심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내가 즐겁고 이웃이 즐겁다면 마을도 즐겁지 않을까요? 마을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선 어떠한 방법들이 필요할지 끊임없이 이웃들과 함께 고민해 나갈 거예요."

수십 년간 장기동 마을을 지켜왔던 커다란 아름드리 은행나무에는 '정'이라는 알찬 열매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곽안나 기자 lucete237@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