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수필가·인천시궁도협회장
▲ 김사연 수필가·인천시궁도협회장

오월동주란 사이가 나쁜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등을 돌린 채 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강풍을 만나 배가 전복될 위기에 처하자 평소의 적개심을 접고 하나가 돼 서로 돕는다는 뜻이다. 철천지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도 함께 살기 위해선 상호 양보하며 타협해야 한다는 진리는 사회 지도층이 아닌 일반 서민들도 잘 알고 있다.

헌데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로부터 회초리를 맞은 새누리당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당권을 차지하기 위해 친박(親朴)계와 비박(非朴)계가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선거기간 중에는 잘못을 용서해 달라며, 아니 우선 표부터 달라며 길바닥에 넙죽 업드려 유권자들에게 절을 하던 이들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나 있는가.

인천 유권자로선 세월호 참사를 핑계로 애꿎은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과 북한 해군의 침공 위험을 무시한채 해경안전본부마저 세종시로 옮긴 정부의 독선과 아집을 용납할 수 없다.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에 쓴 소리 한마디 못하고 청와대 눈치만 살피는 거수기 노릇만 했고, 배신의 정치를 심판한다며 공천 보복의 칼날을 휘두르고, 친박보다 더 골수의 진박임을 자처하는 어릿광대짓까지 벌였다.

여소야대의 선거 결과에 대해 석고대죄라도 해야 할 형국에 공천 학살을 당한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구사일생한 양 계파 소속 의원들의 복당 승낙 여부를 두고 각기 유리한 주장을 내세우며 싸우고 있다.

비박계인 유승민·주호영·안상수·강길부·장제원·이철규 당선자 등 6명은 선의의 피해자로 구제하지만 막말 파동의 주인공인 친박 핵심인 윤상현 의원은 별도 논의하자고 주장한다. 선거 전, 탈당한 의원은 절대로 복당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말을 바꾸지 말라는 의견도 있다. 총선 참패 주역 중의 한 사람인 이한구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복당 허용으로 새누리당이 또다시 정체성 없는 이념 잡탕당이 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고 오직 청와대에만 맹종해온 그들이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공천 이념이란 무엇일까. 총선 승리를 과신한 공천 실권자는 당 대표도 공천받지 못할 수 있다고 협박하며 상상을 초월한 칼날을 휘둘렀다.

혹자는 비주류 시절 자신들도 박대를 받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말뚝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자만심 때문인지 아니면 차마 사약을 내릴 수 없어 귀양을 보내듯 오지에 공천한 후보 중엔 차기 대권주자들도 있었고 그들의 전멸로 인해 여당은 차기 대권 수호에서 더 어려운 처지가 됐다.

당이 타 지역구에 공천했을 때 지역구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라며 거절했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낙하산 공천을 지양했더라면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국민들로부터 진정한 지도자로 존경받았을 것이다.

입바른 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배신자와 비박계로 낙인찍어 피를 말리는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은 뒤주 안에서 죽어가는 사도세자를 연상하며 냉혹한 정치와 오만한 새누리당에 치를 떨었다. 결국 새누리당의 열열한 팬이었던 보수층은 김무성 당대표의 옥쇄파동을 유발시킨 깃털과 몸통에 싸늘한 눈총을 보내며 표심을 결정한 것이다.

국민들은 극적으로 살아남은 유승민 의원에 위로와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청와대의 진심어린 사과를 기대했으나 그것은 과분한 욕심이었다. 새누리당이 현실의 위기를 파악했다면 이제라도 공천파동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제1당을 되찾기 위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동료의원들을 복당시켜야 한다.

그러나 복당 대상자가 친박이냐 비박이냐의 수자에 따른 지분 경쟁에만 정신을 팔며 여당의 열렬한 팬이었던 보수층 유권자들의 마지막 기대마저 저버리고 있다. 마치 함께 조업을 하다가 거센 폭풍우에 휩쓸려 바다에 빠진 동료를 모두 구조하지 않고 친한 선원만 골라 승선시키겠다는 식이다.

원유철 비상대책위원장의 거취를 두고도 친박과 비박은 당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태풍 속에 표류하는 배가 난파당하지 않도록 누군가 조타실을 지켜야 한다는 친박계의 주장에 반해 비박계는 선거 패배를 책임지고 물러난 지도부는 당의 비대위원장을 추천할 명분과 권한이 없다고 반박한다. 이처럼 사사건건 상대방을 탓하며 염소처럼 뿔을 겨루고 있어 실망한 보수층은 새누리당에 더 등을 돌리고 있다.

국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정당 투표를 통해 제3의 당을 창출했으며 이를 계기로 다여(與) 다야(野)도 장려할만한 정치구도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새누리당이 다가오는 대선에서조차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오월동주를 선택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친박과 비박이 갈라서는 편이 낫다. 국민들은 당권분쟁보다 국가를 위한 정책개발에 전념하는 정당을 원하기 때문이다. /김사연 수필가·인천시궁도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