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맞이 분주 … "매년 잔칫상 고맙지만 자식생각 사무쳐"
▲ 민족대명절 설을 앞둔 4일 인천 연수구 사할린동포 복지회관에서 열린 '사할린 동포와 함께하는 설맞이 행사'에 참가한 할머니가 직접만든 러시아 펠메니로 끓인 만두국을 차례상에 올리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어르신들. 올해도 늘 건강하세요. 자식들 대신해 세배 올립니다."

4일 오전 10시30분. 인천 사할린복지회관은 설 맞이 잔치로 분주했다.

댕기머리를 하고 색색깔의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직원들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휠체어를 밀고 하나둘 행사장 안으로 들어왔다.

20여명의 직원들이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세배를 하자 함박웃음으로 화답한다.

"아이고, 세배를 받았으니 세뱃돈을 줘야지."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민숙자(85)할머니와 휠체어에 탄 김소나(92)할머니는 쌈짓돈을 주섬주섬 꺼내 직원 손에 꼭 쥐어준다.

이들에게 회관 직원들과 사회복지사들은 사할린에 남겨 둔 그리운 자식이고 손주다.

영하 20도의 혹독한 추위. 그 보다 매서웠던 사할린의 기억을 뒤로한 채 일제 강점기 '국가총동원령'에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됐던 동포들은 지난 1999년 꿈에 그리던 고국의 땅을 다시 밟았다.

현재 인천에는 700여명의 동포들이 살아가고 있다. 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는 92명이 입주해있다.

이날 잔치는 러시아 만두 펠메니를 만들고 차례상을 준비하는 등 한껏 명절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이런 날일수록 동포들은 사할린에 남겨 둔 가족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행사 시작 시간을 훌쩍 넘길 때까지 추운 날씨에 먼 산을 바라보며 줄 담배를 피우던 김승오(72) 할아버지는 5년 전, 7살 터울인 누나와 한국에 들어왔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국에 들어왔지만 가족을 향한 그리움은 애달프다 못해 뼈에 사무친다.

"그리워. 사할린에 꽃 같은 딸 2명을 두고 왔어. 손주도 있는데. 직원하고 복지사선생님들이 명절마다 잔치상을 차려줘서 고맙지만 가족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잖우. 다 같이 들어왔으면 좋겠어. 딸들 얼굴이 아른거리지 이런 날이면 더더욱."

행사장 주위를 맴돌던 정선자(86·가명)할머니는 4년 전 남편과 함께 인천에 터를 잡고 회관에 입주했다. 그러나 남편을 여의고 홀로 맞이하는 설은 더욱 쓸쓸하기만 하다.

정 할머니는 "자식과 형제들도 사할린에 있고 남편마저 한국에 없으니 설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온 가족이 웃고 즐기며 맞이하는 설. 낯선 땅을 떠나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4000여명의 사할린 동포들에겐 가족에 대한 애달픈 마음만 깊어져만 가는 '그리운 명절'이다.


/곽안나 기자 lucete237@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