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버드에 '스포츠 과학' 심는다"


어떤 조직이 장기간 좋은 흐름을 이어가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원 삼성은 최근 매년 변화를 겪으면서도 꿋꿋이 K리그에서 정상권을 유지해왔다.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조직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젊어진 수원 삼성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선수와 코칭스태프간의 믿음이다. 그 중심에는 소통과 자율을 중요시하는 서정원(사진) 감독의 축구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서 감독은 데이터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자신만의 선수단 운영 방식을 구축했다.

수원 삼성의 전지훈련지인 스페인 마르베야에서 만난 서 감독은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수원 삼성만의 팀 운영 노하우를 공개했다.

수원 삼성을 지탱하는 첫번째 힘은 서정원의 축구 철학

서 감독은 자신의 축구 철학을 설명하면서 25년 전 스승과 제자로 첫 인연을 맺었던 데트마르 크라머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 이야기를 꺼냈다.

독일 출신의 크라머 감독은 1991년 1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올림픽팀을 맡아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본선행을 이끈 지도자다. 서 감독은 아직도 당시 올림픽대표팀의 분위기를 잊지 못한다.

그는 "당시에는 선수들끼리도 우리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1990년대 초반만해도 선수와 코칭스태프와의 관계는 지시와 복종으로 이루어진 일방통행식이었다.

하지만 크라머 감독은 달랐다. 선수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팀을 이끌면서 파격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다. 서 감독은 크라머 감독을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나를 지도자를 만든 분이시다. 바르셀로나올림픽 이전까지는 내가 지도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나는 당시 크라머 감독이 선수들에게 했던 것을 흉내내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서 감독은 자신이 현역시절에 느꼈던 딱딱한 사제, 선후배 관계가 제자들에게까지 되풀이 되지 않길 원한다.

그는 "내가 새롭게 팀에 합류한 선수들에게 첫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코칭스태프의 눈치를 보지 말라는 것이다. 선수들은 편하고 즐거워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웃어야 자기 것을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풀어낼 수 있다. 우리 팀에 처음 온 선수들에게 항상 웃으라고 강조한다"면서 "특히 식당에서는 선수들에게 조용하게 있지 말라고 한다. 우리 선수단의 식사 시간은 시장통 같이 시끄럽다. 운동장 밖에서까지 불필요하게 긴장감을 조성해서는 팀이 좋아질 수 없다. 하지만 운동장안에서만큼은 진지해야한다. 나는 선수들에게 즐겁게 진지하라는 이야기를 자주한다"고 밝혔다.

리더의 역할은 팀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선수단의 자율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는 서 감독의 축구 철학은 젊어진 수원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서 감독은 "코치들에게도 새로 합류한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계속 주라고 이야기를 한다. 운동장에서는 선후배가 없다. 자신의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한다. 그런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편안한 환경과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의 고질병 중 하나는 선수들이 실수를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특히 아마추어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신인 선수들의 경우 프로에 와서 훈련이나 경기에서 실수를 하면 코칭스태프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벤치를 쳐다보는 상황이 자주 나온다. 이런 장면이 반복되면서 선수들은 점차 안전한 플레이만 고집하게 된다.

서 감독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칭찬이라는 도구를 활용한다.

그는 "순간순간 어떻게 코칭스태프가 반응을 해주느냐가 선수들에게는 중요하다. 잘못을 추궁하고 다그치면 더 기가 죽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선수 시절부터 스포츠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서 감독은 지도자로서 제자들의 심리 상태를 최대한 잘 보듬어주려고 노력한다.

그는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할때 구단에 심리치료를 하는 의사가 상주해 있었다. 나도 심리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했다. 결국 강한 것보다는 부드러운 것이 선수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서 나도 선수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는 편이다. 선수는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즐거워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칭스태프의 칭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수원 삼성을 지탱하는 두번째 힘은 데이터 축구

▲ 지난해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5 수원 삼성과 FC 서울의 슈퍼매치에서 수원 염기훈이 후반 팀의 두번째 골을 넣은 뒤 손을 들어 팬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 감독은 데이터에는 답이 있고, 길이 있다고 믿는다. 그는 K리그에서 데이터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지도자다.

이제 데이터는 수원 삼성의 팀 운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됐다.

서 감독은 2013시즌부터 지난 3년간의 데이터를 통한 다각적인 분석과 비교로 올시즌 팀 운영의 큰 틀을 잡았다.

그는 "올해의 경우 지난 3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매 시즌이 끝나면 전체 데이터를 나온다. 우리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12개 구단과의 비교를 하는 것도 우리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고 설명했다.

수원의 경우 짧게는 1경기, 길게는 1년 단위로 폭넓게 데이터 활용을 하고 있다. 경기가 끝나면 해당 경기의 스프린트 횟수, 패스 성공율, 뛴 거리, 크로스의 정확도 등의 세부 데이터가 담긴 자료가 출전 선수들에게 전달된다.

선수들은 그 데이터를 통해 자신의 플레이를 이전 경기와 비교할 수 있고, 보완해야 할 점과 기량이 발전한 부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데이터는 팀 내에서 공유돼 자신과 동료들과의 비교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한 자료가 된다.

서 감독은 "선수들이 다들 자신의 데이터에 대해 관심들이 많다. 그것을 통해 팀이 발전하고,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요소가 크다"고 강조했다.

수원은 시야를 넓혀서 K리그 뿐만 아니라 유럽 리그의 데이터까지도 비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유럽 빅리그 선수들과 K리그 선수들이 무엇이 다른지는 데이터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 감독은 "우리와 비교하면 유럽이 템포, 기술, 체력 등 모든 부분에서 앞선다. 무엇보다 유럽은 빠른 템포가 몸에 배어있다. 하지만 우리는 천천히 할 때는 모두 잘 하는데, 속도가 빨라지면 다들 자신의 플레이를 하지 못하고 실수가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데이터를 활용한 큰 줄기를 결정한다.

시즌이 개막하기 전에 전 선수단 미팅을 통해 지난 시즌 데이터를 통한 장단점을 분석한다.

올해도 2차 전지훈련지인 스페인 마르베야에 도착해서 서 감독이 직접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선수들에게 데이터에서 나타난 지난 시즌 수원의 문제점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즌을 준비하는 훈련의 콘셉트도 데이터에서 나온다.

수원 삼성의 경우는 지난 시즌 세트피스 상황에서 내 준 실점이 전체 실점의 49%나 차지했다.
이를 토대로 분석을 해보면 인플레이 상황에서의 실점율은 12개 구단 중에서 최하 수준이라 수비 조직력에서는 합격을 받았지만 세트피스 수비는 정반대였다.

수원은 스페인 전지훈련 기간에 선수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서 세트피스 공격과 수비 훈련을 하는 등 같은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집중적인 연마를 하고 있다.

2014시즌의 경우 공격 작업에서 크로스의 질이 좋지 않다는 특징이 데이터를 통해 나와 동계 훈련에서 집중적인 크로스 훈련이 이어지기도 했다.

서 감독은 "데이터 축구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다. 내 생각은 단순하다. 좋은 것만 빼서 쓰면 된다. 나는 데이터를 너무나 잘 활용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데이터를 제시하는것 보다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말라가(스페인)=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