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천으로 오면서 부모님이 무척 좋아했다. 고향에서 뛰는 모습을 직접 보시는 즐거움이 크셨다. 그리고 내가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준 곳이 바로 고향팀 인천이다. 그 고마움을 알기에 팀이 어렵다니 더 남고 싶었다" 이천수가 올 초 인천 구단과 재계약을 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2014년 계약기간이 끝났지만 2015년 연봉 삭감을 받아들이면서까지 고향 팀과 1년 재계약을 했다. 아시아경기대회 이후 초긴축 재정 운영 상태인 인천시의 방침에 따라 엄청나게 예산이 깎인데다 임금 체불 사태까지 상황은 최악이었지만 이천수는 새 코칭스태프 아래서 선참으로서, 팀 재건과 부활에 기꺼이 동참하기로 했고, 올 시즌 그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런 '인천의 아들' 이천수가 결국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부평동중과 부평고를 졸업한 이천수는 고려대를 다니다 2002년 울산 현대를 통해 K리그에 데뷔했다. 그리고 그해 열린 한일 월드컵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맹활약했다. 이후 4강 신화를 이룬 주인공 중 한 명으로 큰 인기를 누리며 해외에 진출했지만 적응에는 실패했다. 그는 누만시아(스페인), 페예노르트(네덜란드), 알 나스르(사우디아라비아), 오미야(일본) 등에서 짧은 선수생활을 하다 K리그로 돌아왔다.

K리그에서는 울산을 시작으로, 수원, 전남 등을 거쳐 2013년부터 고향팀인 인천에서 뛰었다. 그의 이름 앞에 '그라운드의 풍운아'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만큼 선수시절 많은 사건사고에 휘말렸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과거 전남 소속으로 구단과 마찰을 겪으면서 무단으로 사우디행을 타진했고 팀을 떠나는 등 도의적으로 잘못을 한 이천수는 구단으로부터 임의탈퇴를 당하며 꽁꽁 묶였다. K리그에서 임의 탈퇴를 당한 선수는 그 구단이 임의탈퇴를 철회하지 않는 이상 K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할 수 없어 이천수는 당시 자칫 선수생명이 끝날 수 있는 벼랑끝 위기까지 몰렸다.

하지만 이 때 이천수를 품은 곳이 고향 인천이다. 그는 인천에서 3시즌을 무사히 보내고 이제 28일 은퇴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축하와 감사의 박수를 보내지만 이는 이별이 아니다. 앞으로 고향 인천을 위해 할 일이 더 많을 것이라는 걸 그는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