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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연금술사였던 시인 박목월 선생의 책 '문장의 기술'에 '일기(日記)' 쓰기 항목이 있다. 어느 인사의 일기를 예로 들었는데, 1926년 2월12일의 일기는 단 한 줄. "이완용이 죽었다"였다. 그날의 주요 사건만 적어도 일기가 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같은 날, 동아일보 1면도 이완용의 사망을 다루었다. 톱기사의 첫머리가 "그도 갔다"였다. 그 다음날의 고정 칼럼 '횡설수설' 난에는 또 "이완용은 작일 황천객이 되었다"고 했다. 그의 죽음은 '죽었다,' '갔다', '황천객이 됐다' 등으로 표현되었다.

▶저잣거리에서는 비속어를 썼을지도 모른다. "뒈지다, 골로 가다, 밥숟갈 놓다, 고택골로 가다, 거꾸러지다, 뻗다, 끝장나다" 등. 하지만 일당(一堂)의 주변에서는 "눈감다, 목숨을 거두었다, 숨졌다, 세상 떴다, 몰하다, 사망했다, 최후를 마쳤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듯 세상에는 묵시적으로 정한 죽음의 격이 있어 단어를 골라 쓴다. 평교 간에는 "사거하다, 종명하다, 절명하다, 사별하다, 영면하다, 귀천하다, 운명하다, 산화하다, 유명을 달리하다"고 한자어를 쓴다. 고유어가 비속어로 표현되는 것과는 다르다.

▶그를 좀 더 높여 이를 때는 "기세(棄世)하다, 별세하다, 하세(下世)하다, 작고하다" 등으로 말하지만, 국가·사회적으로 공로가 있는 이들에게는 "타계(他界)하다, 상선(上仙)하다, 서거(逝去)하다" 라고 표한다. 이때 '서거'는 최상층 어(語)이다.

▶지난 세월, 민주화에 앞장섰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이 오늘이다. 생전에 현재의 인천 발전이 있게끔 국제공항 건설, 연수구 신도시 조성, 직할시에서 광역시로의 개편 등 정책적 배려를 했던 것에 다시금 감사를 올리며, 명복을 빈다.

▶동시에, 멀지 않은 장래에 다가올 우리 자신의 죽음을 세상이 어떻게 불러줄 것인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무념치 않으리라 싶다. 죽는 마당에 무슨 사치냐 하겠지만, "뒈졌다"는 소릴 들으며 생을 마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