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유 시인·문학치료사
▲ 김지유 시인·문학치료사

모르는 게 많아질수록, 사람은 점점 불안해진다. 불안은 우리를 사정없이 괴롭히지만,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들이 인간의 생존을 돕기에 한편으로는 삶에서 꼭 필요하기도 하다. 삶의 불확실성을 불편해하며 끊임없이 답을 찾아 헤매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근래, 역술에 빠진 젊은 세대를 다룬 기사를 종종 보게 된다. 점집의 고객 중 30% 이상을 차지한다는 20~30대들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대나무 숲으로 점집을 택하고, 하물며 취업부적이나 결혼부적까지 지닌다고 한다.

일과 사랑처럼 기본적인 삶조차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할 출구가 없다보니, 점사(占辭)나 부적에나마 의지하려는 모습이다. 이미 역술인이 50만명이 훌쩍 넘어선 우리나라에서는, 신경정신과 의사의 최대 라이벌이 역술인이라는 웃지 못 할 농담이 나올 법도 하다.

점술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실험 결과, 역술인과 일반인의 예측 능력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놀라운 것은, 실험자들이 역술인의 말을 믿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콜드리딩'을 언급한다.

이는 상대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고도의 심리학적 기술이다. 가령, 다방면 해석이 가능한 말(최근에 변화가 생겼네!), 반대적인 말(강하지만 한편으론 여려!), 혹은 일반적인 일을 특별하게 만드는 말(몸에 흉터가 있지!) 등이다. 여기에 외모나 말투 등의 관찰이 더해지면, 이것이 마치 신비한 능력을 갖춘 것처럼 포장이 된다.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잘못된 이해라고 할지언정, '알 것 같은' 느낌만으로도 그 부분에 대한 불안은 감소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점술이 주는 위안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잘못된 조언과 이해가 설령 엉뚱한 대비책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그 과정 역시, 불안을 이기며 살아내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니 말이다. 그런데, 꼭 역술이어야 할까? 장당 만원에서 수십만 원까지 하는 부적이어야 할까?

모든 인간에게는 신성(神聖)이 내재되어 있다. 이 신성을 만나려면 거경궁리(居敬窮理)를 통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는데, 사람과 사물을 경건하게 대하며 사색하는 이 마음내기가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

매스컴이나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에 매몰된 일상은 통찰을 게으르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깊은 '자기'에게 다가갈 기회조차 빼앗긴 채, 손쉬운 타인의 처방에 기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 신전의 메시지처럼, 내면의 성찰을 통한 신성과의 만남이 있어야만 불확실성에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다.

성찰의 손쉬운 방법 중 하나로 일기쓰기를 권해본다. 일기를 쓰는 것은 괴로운 생각을 멈추게 하는데 꽤 효과적이라는 실험결과가 있다.

일기를 통해 막연한 불안과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걱정이 줄고 고민해결능력이 향상되었다. 이는 신체적 건강에도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에 이른다. 같은 맥락에서 항암치료 중, 환자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일기쓰기는 활용되고 있다. '안네의 일기'를 보더라도, 극한 상황에서의 일기쓰기가 어떤 위안을 주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절기상 곧 백로이다. 벼에 맺힌 낟알은 하루가 다르게 황금색으로 변할 것이고, 고된 여름농사를 끝낸 농부들은 추수까지 잠시 쉬어갈 것이다. 변화무쌍한 세계에 적응하느라 모두가 고단한 날들이다.

이에 짓눌린 자기 안의 신성과 자유의지를 위해, 잠시만 멈추어 일기를 써보자. 일기조차 글쓰기라 부담스럽다면 '~해서 감사하다.', '~해서 다행이다.'라는 문장을 채우는 감사일기나 다행일기도 좋다. 쓰다 보면 역경을 발판삼아 성장하려는 마음, 곧 회복탄력성이 부적처럼 착 달라붙어,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처럼, 뭐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리고 일기를 쓰는 당신 역시, 그렇다. /김지유 시인·문학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