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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때에 문화부 장관의 기자회견 초청장이 사무실로 배달되었다. 내용을 보니 국제현상 공모한 현대미술관 설계 당선작 발표 행사였다. 모처럼의 문화부 장관 초청기자회견이었기에 동료 특파원들과 함께 문화성 장관실로 갔다.

기자회견장에는 예상외로 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운집해 있었다. 미술관 설계 당선작 발표에 쏠린 언론계의 관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미셀 두아멜 문화부 장관은 프랑스 정부가 현대미술관을 건립하기로 한 배경을 설명한 후 국제공모를 실시했다고 했다. 당선작을 발표하기 직전 기자회견장은 잠시 긴장감이 감돌았던 기억이 난다. 문화대국으로 자처하고 공인받는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681편의 응모작 중에서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응모작이 당선되었다"고 발표했다.

▶기자회견장은 잠시 놀라움으로 술렁거렸다. 예술과 미술의 나라 그리고 문화국가로 자처하는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의 설계를 다른 나라의 건축가에게 맡기는 포용성과 국제적 감각을 실감할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건축을 공학 측면보다는 예술의 경지로 보는 프랑스 정부는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오늘날 파리의 명소로 자리매김한 퐁피두센터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현대미술관이다.

▶프랑스 문화성의 인정을 받은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그 후 세계 각국에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설계했고 2006년도에는 미국 타임지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히기도 했다. 이탈리아 제노바의 건설업자 가정에서 태어난 피아노는 지금도 제노바, 파리, 베를린에 건축 사무실을 두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건축물들을 설계하고 있다.

▶퐁피두센터의 피아노 이후 프랑스 문화부는 미술관 관장들도 국제공모를 통해 선발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예술가 작품들을 전시하고 여러 나라에서 오는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미술관장이 꼭 프랑스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이유가 없다는 문화부의 발상이었다. 김종덕 문화장관이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외국인을 선발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보도가 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문화 책임자의 파격적 발언이지만 문화 관료의 폐쇄적 속성을 장관 자신이 모르면서 홀로 멋 내는 소리로 들린다. /언론인